<큐레이션의 시대>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민음사 펴냄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하 생략)너무나도 유명한 김춘수의 <꽃>이란 시다. <큐레이션의 시대> 프롤로그를 읽고 연상된 구절이다. 이 책에 나온 ‘큐레이션의 시대’는 한마디로 말하면 김춘수의 시처럼 세상에 존재하지만 의미 부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잊고 지내거나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 내지 ‘재탄생’이 가능해지는 시대다.꽃은 세상에 존재하나 누구도 그 꽃의 존재와 아름다움과 같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현상이나 무의미한 존재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꽃을 ‘꽃’으로 알아보고 이름을 붙여주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의미 부여를 했을 때 비로소 ‘꽃’이란 존재감이 확실하게 살아난다. 그때부터 진정한 ‘꽃’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연인이 사랑을 고백할 때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꽃이 비로소 자기 본연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 과정을 거쳐 ‘꽃’은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추가적인 기능까지 해내게 된다.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은 좋은 정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 일상에 꼭 알아둬야 할 정보를 불특정하고 방대한 자료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인터넷 서핑 중이거나 또는 RSS(rich site summary, really simple syndication) 기능을 활용해 뉴스와 각종 정보를 열람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를 찾으면 ‘즐겨찾기’를 하거나 ‘북마크’를 하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로 선호도를 나타내는 것은 바로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는 의미 부여의 행동이다. 김춘수의 시를 적용하면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이다. 일종의 편집행위이자 코디네이션 활동이다. 지식의 양은 늘었으나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서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큐레이션의 정의는 정보를 수집하고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수집되기 전에 광대한 노이즈의 바다에 표류하고 있던 단편적인 정보들의 큐레이터에 의해 끌어 올려져 의미를 부여받고 새로운 가치로 빛나기 시작한다.”이제는 넘쳐나는 정보들을 얼마나 잘 고르고 편집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예술작품의 정보를 찾아모으고 이를 빌려오거나 수집한 후 전체를 일관하는 의미를 부여해 기획전 등을 여는 일을 하는 큐레이터가 필요하듯 이젠 디지털세계에서도 가치있는 정보를 얻는데 길라잡이가 필요한 것이다.이 책은 디지털 미디어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보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큐레이션이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상의 온라인 서비스의 사례나 전략보다 70세에 그림을 그려 한 남성에 의해 재능이 세상에 알려진 조지프 요하컴 이야기, 브라질 음악의 거장 에그베르트 지스몬티의 재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큐레이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어 재미있으면서도 이해하기도 쉽다.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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