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기업. 하루 적자 8300만달러(약 936억원), 주가 1.01달러라는 바닥에서 일어나 지난해 매출 1280억달러와 순익 202억달러를 기록한 기업. 직원 4만1600명이 6200달러씩 이익을 나눠 가진 기업. 바로 포드자동차다.포드의 성공신화를 이끌어낸 주인공은 앨런 멀럴리(사진·66)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2008년 11월 1.01달러로 바닥 친 포드 주가를 지난 4일(현지시간) 종가 기준으로 12.50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이런 공로로 멀럴리는 지난해 총 2950만달러의 총보수를 챙겼다. 지난해 미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이다.멀럴리가 포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6년 9월이다. 그가 합류하기 몇 달 전 포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당시 포드의 신용등급은 정크본드 수준인 'Ba1'까지 추락했다. 언론은 포드를 '추락천사'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때 멀럴리에게 SOS 신호를 보낸 이가 헨리 포드의 증손자 윌리엄 클레이 포드 2세다.멀럴리가 포드 2세 눈에 띈 것은 9·11 사태 이후 적자로 허덕이는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에서 부사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멀럴리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포드로 옮겨와 멀럴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생산라인 간소화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는 모두 생산 중단하고 인기 좋은 브랜드 위주로 생산체계를 재편했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연비가 낮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 판매는 포기했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북미 시장 내 설비는 줄여나갔다.이후 포드의 수익성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멀럴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포드의 관료주의를 개선하지 않고는 실적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각종 회의로 낭비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도록 조치했다.멀럴리는 권위적인 모습도 버렸다. 임원 식당 대신 일반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했다. 부서 회의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갑자기 나타나 회의에 참석하고 직원 개개인에게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 모두 직원들과 가진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멀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어머니의 고향인 캔자스주 로렌스에서 자랐다. 17세의 멀럴리는 인간을 달로 보내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도전정신에 크게 감명 받았다. 캔자스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그는 1969년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1982년에는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도 받았다.1969년 캔자스 대학 졸업과 함께 보잉에 발을 들여놓은 멀럴리는 요직을 두루 거치며 보잉기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윽고 보잉의 상용 항공기 부문을 이끌다.CEO 자리에 오른 뒤 2006년 9월 포드로 자리를 옮겼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보잉에서만 37년 동안 일한 셈이다.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멀럴리는 테니스·골프·독서가 취미다. 조유진 기자 tin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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