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현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을 가리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내 스포츠에도 비슷한 뜻을 가진 비유법이 있다. 바로 ‘양궁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일’이다.양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금메달을 명중시킨 한국 스포츠 최고 효자 종목이다. 그만큼 선수층은 두껍고 실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18일부터 23일까지 남해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 2차 평가전은 낙타가 두 번째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무대다. 평가전에는 첫 번째 바늘구멍을 통과한 여자 8명과 남자 7명 그리고 지난해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으로 1차전을 면제받은 김우진이 출전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남녀 상위 6명에게는 세 번째 바늘구멍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선수 명단에 포함된 이름은 여느 때보다 쟁쟁하다. 여자부에는 장혜진, 최현주, 이성진, 기보배 등 수준급 선수들이 모두 가세했다. 김우진, 오진혁, 김법민, 임동현 등으로 구성된 남자부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후보들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바늘구멍을 통과할 선수는 남녀 각각 3명뿐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소 주춤했다. 남자는 개인전에서 김우진이 금 과녁을 명중하고 단체전에서 6회 연속, 통산 10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여자는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직전 대회인 2009년 울산 대회에서 한국은 남녀 개인전(이창환 주현정)과 남녀 단체전 우승을 모두 휩쓸었다. 홈그라운드였기에 가능한 성적은 아니었다. 한국은 1997년 빅토리아(캐나다) 대회와 2005년 마드리드 대회에서 4개 종목 금메달을 모두 따냈다. 특히 여자 궁사들은 1989년 로잔 대회에서 개인전(김수녕)과 단체전 우승을 거둔 이후 지난해 토리노 대회까지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여자 단체전 11회 우승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남자 궁사들의 활약 또한 못지않았다. 단체전에서만 10회 우승을 거뒀는데 이는 1960, 70년대 양궁 강국이었던 미국의 14회에 이어 통산 2위를 달리는 기록이다.
한마디로 한국 양궁은 1980년대 이후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올해를 바라보는 눈 또한 다르지 않다. 양궁 국가대표팀은 7월 27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제30회 런던 하계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녀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모든 메달을 목에 건다는 목표로 지난해 11월부터 합숙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 정상을 수성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담력 증진을 위해 특수부대에 입영하는가 하면 관중 소음이 심한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활을 쏘기도 한다. 2차 평가전이 진행 중인 남해 공설운동장은 과녁의 방향과 경기시간 등 런던 올림픽 양궁 경기가 벌어지는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어놓았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주된 이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79년 7월 19일 아침 신문을 펼쳐 든 많은 스포츠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쓴이 역시 ‘한국 양궁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기사는 김진호가 독일 서베를린에서 벌어진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30m, 50m, 60m, 70m)과 단체전 등 2관왕을 차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모스크바 올림픽을 불과 1년여 앞뒀을 때의 일이었다. 유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는 그렇게 신데렐라처럼 출현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스포츠팬들은 양궁(Archery)이라는 종목에 꽤 낯설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양궁은 근대 올림픽 초기인 1900년과 1904년, 1920년 대회 등에서 몇 차례 치러졌지만 1972년 뮌헨 대회 때가 되어서야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 무렵 세계 양궁을 이끈 건 미국, 소련, 핀란드, 스웨덴 등이었다. 한국에서 양궁은 1968년 제49회 전국체육대회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게다가 한국에는 전통 종목인 국궁이 있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한 양궁은 빠른 시간 내 효자 종목으로 거듭났다. 한국은 1985년 서울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해 남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3년 뒤인 서울 올림픽에서는 여자 개인전에서 김수녕이, 남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쏴 한국이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종합 4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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