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경찰과 검찰이 연일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이 ‘경찰 뇌물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발을 들여 놓으며 새로운 긴장 국면에 접어드는 모양새다.서울중앙지검 강력부(김회종 부장검사)는 15일 ‘강남 룸살롱 황제’ 이모(40)씨의 이른바 ‘경찰뇌물리스트’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지검은 대검찰청(검찰총장 한상대)과 논의한 끝에 첩보 상의 뇌물리스트의 존재에 대한 신빙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해 수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리스트엔 경찰은 물론 구청·소방서·보건소 등 관계 공무원 30여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한 사람당 3000만원 이상씩 모두 20~3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공무원들의 주머니에 흘러 들어 갔다고 주장하며 내연관계에 있는 장모(35·여)씨를 통해 해당 경찰관들에게 압박을 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씨의 뇌물 리스트 확보에 나섬과 동시에 이씨는 물론 이씨를 면회한 인물들을 확인해 조만간 직접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조세포탈 혐의로 지난해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씨를 면회한 현직 경위 등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접견 비리 의혹의 주인공인 이씨마저 “경찰과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난항을 겪고 있는 경찰에게 너 보란 듯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형국이다. 검찰이 리스트를 파헤치는데 성공할 경우 당장 2010년 이씨의 조세포탈 혐의 수사과정에서 경찰 등 당국과의 유착 의혹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경찰 수사력이 의심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검·경은 이미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경찰의 수사지휘 검사 고소 사건으로 미묘한 신경전을 계속 이어가던 상황이다. 경남 밀양경찰서 정재욱 경위(30·경찰대 22기·지능범죄수사팀장)는 8일 “수사 축소를 종용하고 폭언·협박을 했다”며 수사를 지휘한 창원지검 밀양지청 박대범 검사(38·사시 43회·현 대구지검 서부지청)를 고소했다. 조현오 경찰청은 고소를 접수한 이튿날인 지난 9일부터 사건을 청장 직속의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중희 부장검사)는 그러나 “범죄지 또는 피고소인 주거지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해야 한다”며 관할 위반을 이유로 13일 사건 이송을 지휘했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들일지 고심하던 경찰은 결국 15일 이송 지휘를 수용키로 해 한발 물러섰다. 피고소인인 박 검사의 전·현직 근무지인 창원지검이나 대구지검으로 수사지휘권이 넘어갈 경우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자칫 검·경간의 ‘밥그릇싸움’으로 비춰질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검·경의 갈등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싸고 불거진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경은 날카롭게 맞서왔다. 전임 김준규 검찰총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수사지휘를 둘러싼 검·경 합의안을 뒤집자 지난해 7월 잔여 임기를 한달반 여 앞두고 옷을 벗었다. 조현오 경찰청장 역시 “직을 걸겠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국무총리실이 검·경 수사권을 직권중재하고 나서자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고 공세에 나섰다. 검찰은 평검사회의, 경찰은 수갑반납 결의 등으로 팽팽하게 맞서 온 가운데 지난해 재보궐 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해진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사건 수사 결과를 놓고 경찰이 체면을 구기면서 한동안 검찰이 우위에 서는 모양새였다. 일선 경찰서의 내사에 대한 수사지휘 거부 등으로 간헐적인 접전을 이어오던 검찰과 경찰은 수사 현안이 아닌 입씨름으로도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밀양사건이 불거지자 창원지검은 진상조사를 거쳐 “수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관할을 벗어나 접수한 고소를 순수한 의도로 보기 어렵다”며 “재지휘건의권 등 법규상 보장된 권한의 행사가 아닌 고소를 택한 것은 검사의 정당한 수사지휘에 대한 거부의사”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곧장 “검사 개인의 고소 사건에 대해 검찰 조직 차원에서 브리핑을 한 것은 부적절하고 성숙하지 못한 자세”라고 비난했다.경찰이 발빠른 행보를 보이자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공무집행과정에서 절차를 두고 문제가 된 사안이 왜 개인적인 사안이냐”며 “고소인의 주장이 진실인양 피고소인을 범인으로 전제하고 몰아가는 것은 인권수사에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밀양사건은 물론 경찰 뇌물 리스트가 불거지며 검·경 갈등의 골이 깊어가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검찰은 문제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도 문제 검사를 잡아들이면 서로 조직이 깨끗해지지 않겠냐"고 발언해 맞불을 놨다. 조 청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검찰 고위 관계자 역시 "별소릴 다한다, 그 정도 수준보단 나으니 아무말 않겠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검·경이 신경전을 이어가며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권리 구제가 지연된 형사사건의 당사자들이기에 검·경은 더 이상 갈등을 키우기보다 인권수사로 국민의 기대에 답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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