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확대'는 2012년 대한민국의 화두다. 경기침체가 수년째 계속되고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은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열망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의료 분야에서 '무상의료'라는 이름으로 제시됐다. 최소한 병원비와 약값 때문에 생활이 위협 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맞춰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무상의료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앞서 현재 지출되고 있는 재정에 낭비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 필수다. 건강보험 전체 지출 중 29%를 차지하고 있는 약품비는 대표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분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 비율이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약품비가 늘어나는 데는 고령화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비싼 약'을 선호하는 처방ㆍ소비 패턴이 핵심이다. 동일한 성분 중 최고가 약의 처방 비중이 49.7%에 달한다. 복제약도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비싼 복제약 사용이 많아 약값이 절감되지 않고 있다. 복제약 가격 산정 방식도 문제다. 복제약이 시장에 나온다는 것은 곧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계단식 가격 산정법' 때문이다. 신약의 특허가 만료된 후 첫 번째 나온 복제약은 신약에 버금가는 가격을 받는다. 나중에 나온 약의 가격은 계단식으로 내려간다. 복제약 중 가격이 '꽤 비싼' 제품이 많고 이런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약값 절감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오는 4월1일 새 약가제도를 도입한다. 신약ㆍ복제약의 가격을 일괄 산정하는 게 주 내용이다. 이는 건강보험 낭비 요소를 제거하고 효율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불법 리베이트가 제약회사 매출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총액은 2조원에 달한다. 리베이트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약가 인하로 인한 제약업체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제도 변경이 의미를 가지려면 후속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일회성 대책에 그친다면 그 효과는 단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한 가지 정책으로 약값 절감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 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또는 순차적으로 진행했을 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일례로 저렴한 복제약 사용을 촉진하는 정책은 약값을 관리하는 국가 대부분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는 약값 절감뿐 아니라 마케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제약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병행한다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약가 인하는 곧바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직결된다. 이번 제도 변화가 약품비 효율화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형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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