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지난 3일 저녁 ㈜한화 주식 거래를 6일부터 정지한다고 공시했다가 일요일인 어제 오전 긴급회의를 열어 이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주말 휴일 중에 공시번복 조치가 취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거래정지 공시는 이 회사 대주주인 김승연 회장과 경영진의 횡령ㆍ배임 혐의와 관련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인지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이유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그런데 180도 입장을 바꿔 그것을 취소한 것이다. 거래소는 '한화의 경영투명성 개선 방안에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간상 만 이틀이 안 되는 사이에 한화가 경영투명성 개선 방안을 작성해 제출하고 거래소는 그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졸속이거나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화 측에서 공개한 그 방안의 내용을 보면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승인을 담당하는 내부 의사결정기구의 위원장을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하겠다는 등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것들뿐이다. 이례적으로 휴일 긴급회의까지 열어 공시번복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거래소는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흘 전인 2일 검찰은 김승연 회장에 대해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의 중형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애초의 거래정지 공시 자체가 이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대주주 리스크'에 대해 거래소가 평가하는 과정을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평가의 부담을 일반 투자자에게 떠넘긴 셈이니 시장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1년간 유사한 이유로 거래정지나 상장폐지를 당한 다른 10여개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또한 거래정지 제도 자체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인데, 거래소는 반대로 거래정지 취소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대주주가 장기간 감옥에 갇힐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투자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와 영향을 저울질할 시간을 갖도록 주식거래를 일정 기간 정지시키는 것이 시장 안정을 위한 원칙이다. 거래소가 시장운영의 기준과 원칙을 어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재벌 봐주기인가, 외압을 받은 건가. 거래소는 공시번복의 경위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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