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북한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2일자 사설에서 '김정은 체제'를 공식 선언하고 유훈통치를 시작하기로 한 건 정치 초년생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세습군주'로서 연착륙 할 토양을 만들어주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김 부위원장이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능력이 없어 일단 '유훈통치 계승'이라는 모양새를 갖추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유훈통치란 말 그대로 세상을 떠난 전(前) 지도자가 남긴 교훈이나 가르침, 지도방침 등을 그대로 이어받아 통치하는 방식이다. 일정기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짜 놓은 북한의 통치체계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북한은 유훈통치를 이미 한 차례 경험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뜻을 이어받아 1994년부터 3년 동안 유훈통치를 했고, 유훈통치가 끝난 뒤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며 명실상부한 북한의 1인자로 올라섰다.결국 북한에서 유훈통치는 확고한 전통 정도로 이해될 수 있으며, 김 부위원장이 유훈통치라는 완충장치 위에 놓였다는 사실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북한이 당장 그릴 수 있는 그림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역설적으로 김 부위원장의 나약함을 드러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리더십과 모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파탄난 경제, 세계 곳곳에서 성공했거나 진행중인 이른바 '자스민 혁명' 등 북한의 목을 조이고 공포심을 키우는 요소가 너무 많다.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거국적인 쇄신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 시점이 코앞으로 닥쳐온 마당에 김 위원장은 사망했고, 지도자 수업을 길어야 3년밖에 안 받은 김 부위원장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에 전격 투입된 셈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살아있었다면 조만간 펼쳐보였을 '새로운 통치'를 김 부위원장이 대신 선보여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 만한 동력이 없다는 게 노동신문의 이번 발표에서 엿보인다. 완충기 혹은 과도기를 생략하기엔 버거웠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김효진 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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