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실을 열었다, 편견의 문이 닫혔다
▲ 지난 9일 밤 9시 30분께 서울대 기숙사에 마련된 이슬람 기도실에서 서울대에 재학중인 이슬람 신도 유학생들이 기도를 하는 모습.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지난 9일, 캄캄한 어둠이 짙게 깔린 관악산 자락의 서울대 기숙사 920동 앞. 밤 9시가 넘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 유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지하 강당에 모인 이들 6~7명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양탄자를 깔았다. 대표로 보이는 한 학생이 맨 앞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로 시작되는 기도를 외운 뒤 모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양탄자 위에 올라갔다. 이들은 기도에 맞춰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기도를 외우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자들을 일컫는 말) 유학생들이다. 지난 10월부터 매일 밤 9시 30분이 되면 이곳에 모여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서울대의 배려가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계층인 무슬림 유학생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선물이 됐다.12일 서울대(총장 오연천)에 따르면, 이 학교의 무슬림 유학생이 모여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10월부터다. 기숙사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이곳에 이슬람 학생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야간 출입 문제로 쉽지 않았지만 기도시간을 30분 앞당기면서 기숙사 측이 허용한 것이다.서울대가 기도 공간을 마련해준 것은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다. 이 공간은 기숙사에 거주하지 않아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 신분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서울대 기숙사에는 88개국 1200여명의 유학생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무슬림의 규모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기숙사 측에서는 920동에 있는 100석 규모의 다용도실을 특정 시간에 기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김성희 서울대 기숙사 사감교수(미술대학 동양학과)는 "9월에 무슬림 학생들이 사감실로 찾아와 간곡히 요청했다"면서 "안전 문제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종교적 형평성과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공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체 기숙사에 거주하는 5000여 명의 학생 중 외국인 유학생의 비율이 커지자 문화적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컸다고 한다. 문화나 종교적 차이로 방을 바꿔달라는 민원이 많았다는 것. 다른 종교에 비해 이슬람교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이어서 무슬림 학생들이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도 컸다고 했다.변화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기도 공간을 마련해주자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있던 무슬림 학생들이 기도 시간에 모였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공간 마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숙사에서 주최한 다문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무슬림 축제를 마련했다. 이슬람권 국가의 다양한 전통 음식을 준비해 한국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공연을 했다. 한국 학생들도 무슬림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가기 시작했다.김지수(23, 정치외교학부 08학번)씨는 "주변에서 탈레반같은 근본주의 집단 때문에 이슬람교에 대해 부정적 편견이 심한것 같다"면서 "축제를 비롯한 학내 행사에서 자주 보다 보니까 그런 편견이 깨졌다"고 말했다.무슬림 유학생인 라히돌(23, 기계항공공학부 10학번)씨는 서툰 발음으로 "기도는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수업이나 시험 때문에 기도를 못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기도 공간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떠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해준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며 서울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이민우 기자 mw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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