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달이다]'박통도…이병철 회장도 다들 내 빵 손님이었지'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
-40년 제빵의 길 숱한 일화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그때가 박정희 대통령 때였지…70년대 광화문 사거리를 하얀 유니폼에 제빵사 모자까지 쓰고 걸었던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요"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주위 시선이 고왔던 것은 아니었다.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72ㆍ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5월5일 어린이날 행사 때 청와대에 불려가 케이크를 만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어린이날 행사한다고 불렀지. 데려갈 때에는 차 태워서 부르더니만 나갈 때에는 바라다 줄 시간이 없다는 거야. 별 수 있나, 케이크 만들던 복장 그대로 청와대 정문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쭉 걸어왔지.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더라구. 그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남자가 흰 모자까지 쓰고 빵 만든다는 걸 많이 몰랐으니까"임헌양 고문은 국내 제과ㆍ제빵조리사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로 통한다. 1970년 조선호텔, 1977년 호텔신라, 1983년 신라명과 등을 거치며 40년동안 한결같이 제빵 조리사 자리를 지켰다. 7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신라명과와 브레댄코 상임고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 제과명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임 고문은 50여 년 전 미 8군내의 클럽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빵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미군 부대는 조리사로 성장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쌀 한 톨도 귀했던 시절, 쇼트닝ㆍ마가린ㆍ버터 등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는 것은 가히 신세계였다. 이곳에서 마음껏 재량을 펼치던 임 고문은 조선호텔 제과과장으로 입사해 7년간 경험을 쌓고, 호텔신라로 스카우트됐다.조선호텔에 있을 때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55번째 생일을 맞아 5각 모양의 5단 케이크를 준비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다. 모든 것이 엄격하고 준엄했던 시절, 임 고문은 "케이크를 만드는데 세심한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써야 했다"고 회상했다. 케이크를 놓는 탁자의 높이와 색깔에 맞춰서 5단 케이크 단의 높이도 정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날 영부인이 입고 나올 드레스에 따라 케이크 색도 맞춰야했다. 임 고문은 "'왜 케이크 단 높이까지 신경써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통령과 영부인이 신고 올 구두 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구두 뒤축이 낮은데 케이크가 너무 높으면 칼을 위로 번쩍 들어 커팅해야하니까 안 된다는 거지."호텔신라에서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이 회장은 국내에서 만든 빵은 드시질 않고 일본에서 가져와 드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산과 국내산 빵의 차이를 분석하던 중 무릎을 쳤다. 밀가루의 차이였던 것. 당시 국내에서는 미국산 밀가루를 CJ제일제당에서 제분해 쓰고 있었고 일본은 캐나다산 밀가루를 썼다.임 고문은 이 회장에게 캐나다산 밀가루를 수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 회장은 "재주없는 놈이 재료 탓만 한다"며 나무란 것. 이어 이 회장은 일본 현지에서 제빵기술자를 데려와 임 고문과 똑같은 재료를 주고 대결을 펼치게 했다. 결과는 일본 기술자의 참패. 결국 이 회장은 임 고문의 요청을 받아들여 캐나다산 밀가루를 수입해줬다. 이후에 이 회장이 던진 한 마디는 "그래, 이 맛이야"임 고문은 "제빵ㆍ제과는 눈에 화려한 것 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중하다보면 '음식은 몸에 득이 되어야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그에게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임 고문은 "일본에서는 조리사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에 문제가 생기면 할복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후배들도 자신의 요리에 오점을 남지지 않겠다는 이러한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오주연 기자 moon170@ⓒ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