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영토를넓히자]미래주방엔 어떤 가전이 필요할까?

도무스-일렉트로룩스 공동 프로젝트, 학생들은 자유롭게 상상·기업은 제품화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프라다ㆍ돌체앤가바나ㆍ구찌 등 명품 브랜드가 탄생한 이탈리아는 수십 년 동안 디자인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세계 디자인 산업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밀라노는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스튜디오들이 밀집해 '디자인의 메카'라 불린다.  이곳에 위치한 도무스 아카데미는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된 디자인 교육기관이 없다는 모순에서부터 출발했다. 1982년, 설립자 마리아 그라치아 마조치(maria grazia mazzocchi)는 디자이너 개인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스승 중심의 도제식 교육 대신 학생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택했다. 도무스 아카데미는 교수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을 때보다 직접 경험하면서 부딪힐 때 학생들의 창의성이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무스 아카데미 내부 전경

'미래의 주방에는 어떤 가전제품들이 필요하게 될까?' 생활 및 산업 가전제품 분야의 글로벌 기업인 일렉트로룩스(Electrolux)가 학생들에게 던진 과제다. 프로젝트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는 교수와 학생뿐만 아니라 기업의 디자인 매니저 브루노 리초테(Bruno Lizzote)씨도 참석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학생들은 그룹을 만들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제 학생들은 미래의 주방 가전제품을 자유롭게 상상하되 일렉트로룩스에서 제품화한다는 전제 아래 아이디어를 구상해야한다.  도무스에서는 수업시간에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강의실에 앉아 교수들의 강의를 듣는 대신, 시장조사를 나가고 회사의 이미지를 분석해 그에 맞는 제품을 기획한다. 물론 디자인 트렌드 분석, 마케팅 전략 등 이론 수업도 듣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율적으로 활동한다. 교수는 학생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협력하고 조언하는 역할이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명확한 과제를 제시한 다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자 3개월 만에 미래 주방가전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1인용 식기세척기(제품명:KEWA)는 시간과 물, 전기세 낭비를 막아주며 싱크대 상판에 빌트인으로 설치해 몸을 숙이지 않고서도 편하게 식기를 집어넣고 꺼낼 수 있다.

 피에트로 루소마노(Pietro Russomannoㆍ이탈리아)씨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식기 세척기가 미래 주방에서도 살아남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1인 가구를 위한 가전제품 시장이 뜨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식기세척기는 4~12인용 모델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시중의 식기세척기보다 획기적으로 작고, 경제적인 1인용 빌트인 식기세척기(제품명:KEWA)다.  몸을 숙이지 않고서도 편하게 식기를 집어넣고 꺼낼 수 있도록 싱크대 상판에 설치하고, 입구가 좁거나 깊은 식기를 세척할 수 있는 핸드형 세척기도 달려있어 컵도 쉽게 세척할 수 있다. 시간과 물은 물론 전기세 낭비도 막아준다.

3단 인덕션(제품명:JUMBLE)은 펴치면 여러 음식을 동시에 조리할 수 있고, 접을 수도 있어 공간활용도가 높다.

 자히라 이벨리세 크레스포(Zahira Ivelisse Crespoㆍ푸에르토리코)씨는 주방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인덕션(제품명:Jumble)을 선보였다. 조약돌처럼 심플한 디자인의 인덕션을 3단으로 구성해 지그재그 형식으로 펼치면 서로 다른 온도에서 여러 음식을 동시에 조리할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다.

와인쿨러(제품명:COOL WINE)는 온도에 예민한 와인의 맛이 변하지 않도록 저장고 안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한다.

 최정근(한국)씨는 벽걸이 수족관과 TV에 이어 벽걸이 와인 저장고(제품명:Cool Wine)를 생각해냈다. 이는 훌륭한 인테리어가 될 뿐만 아니라 와인의 맛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온도에 예민한 와인의 맛이 변하지 않도록 저장고 안에서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을 더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9개의 학생 작품은 일렉트로룩스를 통해 제품화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도무스 학생들은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1년 간 7~8개씩 진행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는다. 일렉트로룩스와 같은 가전제품 기업에서부터 폭스바겐 등 자동차 회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는 다양하다. 기업과 함께 일하되 학생들은 자유롭게 아이디어 펼칠 수 있어

패션매니지먼트학과에 재학 중인 윤내리(28)씨.

신영와코루에서 3년 간 속옷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올해 패션 매니지먼트과에 입학한 윤내리(28)씨는 도무스아카데미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실전에서 배운다'는 원칙을 꼽았다.  그는 "참신한 아이디어도 상급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되는 등 현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낀 답답함이 컸다"면서 "이곳은 기업과 함께 일하더라도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 디자이너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도 도무스 아카데미의 장점이다. 윤씨는 "학생들이 개개인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팀을 이뤄서 진행한다"며 "다양한 전공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아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공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패션매니지먼트과의 올해 정원은 29명으로 이들은 총 16개 국가에서 모였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미국, 유럽, 호주, 중동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국적과 문화,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밀라노=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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