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와 지역구도를 핵으로 하는 한국 정치는 1987년 6월항쟁과 그 해 가을 김영삼-김대중 분열의 결과로 나타난 ‘87년체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현재의 여야 대결구도는 1990년 1월의 이른바 ‘3당합당’에서 비롯된다.야당투사 김영삼이 12.12 군사쿠데타 세력인 노태우와 손잡고 민자당 창당을 선언하던 그 해 겨울의 ‘초현실적’ 그림은 파란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가장 충격적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학생운동과 재야·노동운동 리더였던 손학규 이재오 김문수 등이 대거 YS의 민자당에 합류했던 계기도 따지고 보면 이 3당합당이었고 아직도 우리 사회 저변을 흐르는 망국적 ‘호남 대 비호남’ 대립 구도도 이때부터 본격화 됐다.3당합당은 7, 80년대 민주화 진영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이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극적으로 ‘변신’한 사건이었다.대구·경북 노태우+부산·경남 김영삼+충청 김종필... 지역적으로 완벽하게 고립된 김대중은 고민 끝에 재야 민주화 세력을 순차적으로 정치권에 영입했다.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구도를 강화, 지역 대결을 희석시키려는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당시 YS를 따라 민자당에 가지 않았던 일단의 민주당 정치인들이 있었다. 김상현 김정길 노무현 등이었다.특히 김정길 노무현은 부산 지역구 의원들이다. 광주에서 김대중과 함께 정치를 하다 정당을 달리하는 격이다. 노무현 등은 속칭 ‘꼬마 민주당’으로 활동하면서 1997년 김대중과 이회창이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을 때까지 나름의 대오를 유지한다.이들은 영남 대 호남, 혹은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 대립을 넘어서는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려다 김대중과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구심력에 의해 결국 소멸되고 만다.그러나 소속 정치인들이 보여준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비전은 부산 출신으로 한나라당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민주당 역시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안철수 교수와 문재인 변호사를 향한 상당수 유권자들의 기대감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1990년대 꼬마민주당의 실험은 이처럼 87년체제 이후를 준비하려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끊임없이 작용해 왔다.# 최동원은 1991년 초대 광역의원 선거 당시 부산 서구 지역구에 바로 그 (꼬마)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1988년 프로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으며 그 해 야당도시 부산을 달군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백만 원을 쾌척했던 그다.경남고 후배인 자신을 총애했던 민자당 대표 김영삼의 영입제의를 뿌리치고 ‘새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던 그는 유세장에서 “대선배(YS)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하기 위해 출마했다”며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을 향해 과감한 직구를 뿌렸다.선거운동 기간 중 마침 부산대학교에서 전대협 5기 출범식이 열렸다. 그 때 전대협에서 활동했던 한 네티즌은 SNS를 통해 “출범식 현장에서 최동원 선수와 악수하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조국 서울대 교수도 SNS에서 “내가 다닌 초등학교 선배였고 ‘동네 행님’이었다”고 인연을 밝힌 후 “주변에선 민자당으로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인데 왜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며 민주당을 택했다”고 돌아봤다.조 교수는 선수노조 결성 주도 후 강제 트레이드 등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추측했다.최동원을 영입했던 노무현과 김정길은 그의 선거를 도왔고 이듬해 총선에선 최동원이 이들을 지원했다. 물론 김영삼을 따라 여당도시로 돌변한 부산에서 그들은 모조리 낙선했다.최고의 연봉을 받는 에이스였으나 구단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던 최동원은 53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끝내 불꽃같은 삶을 마감했다.그러나 선수시절 등번호인 11번의 ‘영구결번’ 얘기가 나오는 등 그는 항구도시의 영웅으로 다시 귀환중이다.불세출 스타를 향한 추억과 함께 새삼 3당합당과 꼬마민주당을 둘러싼 신산한 기억도 하나둘 떠오른다. 레전드 최동원---광남일보 국장 dw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광남-정치경제부 김대원 기자 dwkim@ⓒ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