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형 헤지펀드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출발선 앞. 선수들이 심판의 총성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 규정도, 자신의 출발 위치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선수는 불만이 가득하다. 심판은 그저 경기 시작을 서두른다. 최근 폐막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풍경이 아니다. 바로 연내 출범을 예고하고 있는 헤지펀드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모습이다. 올해 금융시장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꼽히는 헤지펀드가 시작부터 자갈 길을 걷고 있다. 시장과 금융당국 모두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위해 열성을 보이고 있지만 벌써부터 곳곳에서 잡음이 난다.지난달 금융투자협회가 내 놓은 '헤지펀드 운용 전문인력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오는 19일 첫 수업이 열리는 이 과정은 시작부터 설왕설래(說往說來)가 무성했다. 교육 정원이 60명으로 제한돼 있는데다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투자자문사 등에서 일정기간 운용경력을 쌓은 펀드매니저들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수강 신청자가 정원을 넘어서면서 일부는 아예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됐다.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입 장벽을 치려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독학으로 내공을 쌓은 선수들은 이 교육과정이 자격증화(化)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기자본 기준을 3조원 이상으로 높여잡더니 전문인력으로 인정받을 기회마저 제한하느냐며 반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협회 측은 난감하기만 하다.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열어 수강 희망자를 모두 수용할 계획이지만 공연한 오해를 샀다는 인식이 팽배하다.헤지펀드용 상품 개발도 큰 장벽에 가로 막혔다. 주가가 폭락하자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측하고 현재의 가격으로 주식을 빌려 미리 팔아놓고 나중에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서 갚는 것을 말한다. 헤지펀드의 대표적 운용 방식인 '롱-쇼트 전략'에서 '쇼트'에 해당하는 수단이다. 이를 금지하는 것은 헤지펀드를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아니냐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외부변수에 의해 급락하는 시장을 제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헤지펀드가 본격 도입된 이후에도 이처럼 정부의 개입이 빈번해진다면 투자상품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헤지펀드는 이제 시작단계다. 출발선, 트랙, 룰 등 경기에 필요한 조건을 정비할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규제의 빗장이 풀리며 총성이 울리고 난 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빅 게임'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현정 기자 alphag@<ⓒ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증권부 김현정 기자 alphag@ⓒ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