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 씨, <내마들>을 아름답게 해줘서 고마워요

세상에나, 이렇게 상처가 많은 사람은 살다 처음 봅니다. 과거의 봉마루(아역 서영주)와 현재의 장준하(남궁민) 사이에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가족사로 인해 가장 혼란스럽고 가슴 아플 인물, 바로 준하 씨 얘기에요. 태현숙(이혜영)과 동주(김재원) 모자가 원수 최진철(송승환)을 향해 십 수 년 째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지만 그 아픔의 깊이가 어디 준하 씨만 하겠습니까. 어린 시절 야멸치게 딱 잡아떼며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하던 김신애(강문영)가 생모인 것도 모자라 엎친 데 덮친다고 악의 화신 최진철이 생부라니 오죽 억장이 무너지겠어요. 모든 걸 알게 된 준하 씨가 득달같이 할머니(윤여정)를 찾아와 물었죠. “다 알고 왔어. 다 알지만 할머니 입으로 확인하려고 온 거야. 김신애, 누구야? 봉영규가 내 아버지가 아니야?” 하며 다그치는 그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준하 씨의 섬뜩한 눈빛에서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마루가 보이더군요. 아니 그냥 눈빛만이 아니라 표정이며 말투, 몸짓까지 똑 닮아 신기했어요. 운신이 어렵도록 쇠약해진 할머니를 막무가내로 잡아끌던 순간에도, 그리고는 다 이 할미가 무식해서 저지른 죄이니 네 어미 신애는 불쌍타 여겨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할머니를 뿌리치며 냉정히 돌아서던 순간에도 마치 어린 마루가 되살아난 양 겹쳐 보이더라고요. <H3>한결같은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H3>

김신애가 생모인 것도 모자라 악의 화신 최진철이 생부라니 준하 씨 억장이 얼마나 무너질까요? <br />

생각나나요? 예전에 말 못하는 미숙 씨가 새어머니로 들어왔을 적에 마루가 아버지(정보석)를 몰아붙이던 장면 말이에요. “놔, 왜 내 아빠야? 왜 저런 여자가 내 엄마야? 왜 하필 난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대체 뭘 잘못해서 내가 이런 집에서 이러고 살아야 되냐고.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헤어 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던 소년 마루,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던, 매일매일 죽도록 미워하던 바보 봉영규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괴로워하는 준하 씨. ‘싱크로율 100 퍼센트’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지 싶어요. 아버지에게, 할머니에게 포악을 부릴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혈연임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 확신어린 믿음이 마루와 준하 씨 사이에 한결같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맙더군요.보통 아역 연기자들이 기대 이상 열연해줬을 때 뒤를 잇는 성인 연기자들의 연기가 신통치 않으면 맥이 뚝 끊겨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잖아요. 심할 경우엔 영 다른 인물처럼 낯설기도 합니다. 굳이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SBS <왕과 나>를 꼽을 수 있겠네요. 성종(고주원)의 아역을 맡았던 유승호, 처선(오만석)의 아역 주민수와 소화(구혜선) 아역의 박보영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며 극 초반 시청률 상승세를 주도했었거든요. 그러나 극본 탓인지 연기 탓인지 이야기가 성인 파트로 넘어가면서 주인공들이 매력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고, 결국 드라마는 용두사미 꼴이 나고 말았었죠. 그래서 <내 마음이 들리지>의 아역 연기자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지켜보며 한 걱정 했다는 거 아닙니까. 자칫 잘못했다가는 중간에 시청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테니까요. 그런데 천만다행, 이 드라마에선 그런 괴리감들을 단 한 차례도 느껴본 적이 없네요. 준하 씨는 물론이고 맑고 순수한 동주도 천진난만한 우리(황정음)도 마찬가지에요. <H3>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들어줘서 고마워요</H3>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아역 연기자들 뿐만 아니라 남궁민 씨를 비롯한 성인 연기자들 모두 고맙습니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 나란히 식물원을 걷고 있는 준하 씨와 우리를 보고 있노라니 “난 오빠 좋은데 오빤 왜 나 싫어해요? 그런데 난 오빠가 좋다 뭐”하고 조잘대던 어린 시절의 우리와 귀찮은 척 하면서도 은근히 우리를 챙기던 마루가 고스란히 오버랩 되더군요. 마루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준하 씨를 뒤로 한 채 어린 시절의 아이들을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될 명장면이었어요. 그리고 마루를 한 눈에 알아본 봉영규 씨가 통곡을 하던 장면이 그처럼 절절할 수 있었던 것도 아역 연기자와 성인 연기자들 사이의 감정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져온 덕일 거예요. 애초 캐릭터를 확실하게 만들고 잘 다져준 아역 연기자들도 대견하고 그 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발전시켜온 남궁민 씨를 비롯한 성인 연기자들도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그대들 중 누구 하나라도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이 드라마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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