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기원전 202년 중국 안휘성 영벽현 남쪽의 해하(垓下). 송곳 같은 바람이 두꺼운 갑옷을 파고들던 12월의 어느 겨울밤.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는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한왕(漢王) 유방이 언제 이렇게 커서, 자기를 압박하게 됐는지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방은 항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해야 했던 신세였다.게다가 유방은 항우가 목숨을 살려주자 변방인 한중 땅으로 도망치면서 다시는 중원을 넘보지 않겠다는 맹세로 단 하나 밖에 없는 길 잔도를 불살라 버렸을 정도로 '찌질' 했던 인물.싸움 실력 역시 유방이 한중에서 대군을 이끌고 나온 후 항우는 싸우는 족족 유방군을 박살낼 정도로 실력차이가 압도적이었다.그런데 이날 상황은 조금 달랐다. 유방군을 이끄는 대장군 한신이 30만 대군으로 항우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사 범증의 권유대로 그때 유방을 죽였더라면, 지금 이런 고생은 없었겠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날 벌어질 싸움으로 천하의 주인이 가려질 터였다.이것이 바로 유방과 항우간 한초쟁패(漢楚爭覇)의 마지막 싸움이자 한나라 400년 역사의 시작이었던 해하성 전투다.요즘 여의도에 감도는 '전운'도 2000년전 해하성 전투때 못지않다. 자산운용사들은 그날의 항우처럼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투자자문사들이 도입이 임박한 황금시장, 헤지펀드의 주도권을 놓고 운용업계에 정면으로 도전해 온 것.운용사들은 사실 지난해부터 자문사들이 돌풍을 일으키며 펀드 자금을 빼앗아 갈 때도 애써 무시해 왔다. 자문사를 경쟁상대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운용사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터.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한신이 30만 대군을 몰고 왔듯 자문사들도 계약고를 41조원까지 불려 운용사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거물'이 됐다.운용사들은 이제 대놓고 금융당국에게 헤지펀드 운용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문사 정도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자문사들의 목소리도 예전과 달리 무게감을 발휘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알다시피 항우는 그날 밤 결국 유방에게 패해 천하를 내줬다. 운용사들이 좋은 시절 보내는 동안 자문사들은 한중 땅의 유방이 그랬던 것처럼 힘을 키워왔다. 헤지펀드를 놓고 벌어지게 될 이 전쟁에서 과연 대업을 이루는 쪽은 누구일까? 자못 흥미진진하다.이초희 기자 cho77lov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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