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화답한 이건희의 묘한 발언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은 이번에도 선문답(禪問答)에 가까왔다. 칭찬인지 조롱인지 분간하기 힘든, 묘한 뉘앙스였다. 통찰력을 지닌 사람은 그 속을 읽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헛다리를 짚었다.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28일 오전 8시20분께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생각을 묻자 "별로 신경 안쓴다"고 했다. 경영권 방어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장관급)이 지난 26일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 회장을 공격한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곽 위원장은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현재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서 보유지분(5%)이 이건희 회장(3.38%)보다도 많은데,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해왔는지 매우 의문시되고 있다"고 이 회장을 직접 겨냥했었다.이 회장은 오히려 "공개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환영한다"고 맞받아쳤다. '공개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국민연금이 정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재계가 '연금 사회주의'라며 강력하게 비판해온 것과 대조적으로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 속내는 '할테면 해보라'며 강한 반발 의사를 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곽 위원장의 얼굴에는 당장 화색이 돌았다. 곽 위원장은 "기업 관료계층이나 경제단체들과는 달리 이 회장께선 매우 통찰력 있는 의견을 보이신 것"이라며 고무됐다. "이 회장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냐"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같은 날 비슷한 시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착잡했다. 전날 재보선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이 이 대통령은 물론 모든 참석자들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열심히 일했지만 국민들에게는 모자랐다는 자성과 함께 "앞으로 서민경제를 더 세심하게 챙기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겠다"고도 했다.이 대통령은 또 "우리 정부가 친기업 친서민 정책을 펴왔는데 일부에서 왜 반기업적이라고 하느냐"면서 "경제계 인사들을 만나 직접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는 곧바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다음주중 경제5단체장들과의 오찬 간담회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이 대통령이 경제5단체장과의 회동을 결심한 데에는 '오해를 풀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참모들은 분석했다. 당장 곽 위원장의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자 이를 직접 진화하겠다는 것이다.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본질은 친시장이며, 그 다음이 못따라오는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라며 "그 기조에 혼동을 주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안나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곽 위원장의 발언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곽 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어졌었다. 주요 정책을 총괄하는 백용호 정책실장은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정부가 '공정사회', '친서민'을 국정기조로 삼고, 동반성장을 강력하게 추진해왔지만, 그 근간은 시장주의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특히 '친서민=반시장'이라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이 자리에 있었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이 회장의 생각이 깊다, 수가 높다는 게 개인적인 느낌"이라며 "경제단체들이 불쾌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계신 분이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 놀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다 보니, 이 회장의 내공을 읽은 셈이다.조영주 기자 yjch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경제부 조영주 기자 yjcho@ⓒ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