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blockquote">거침없이 질주하는 폭주기관차, <로열패밀리>에 동승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로열패밀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 있다. <로열 패밀리>의 원작인 일본소설 <인간의 증명>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인간의 증명>은 마츠모토 세이쵸와 함께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모리무라 세이치의 대표작으로 1976년 발표 당시 5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타케노우치 유타카가 주연을 맡은 2004년작을 포함하여 총 네 차례에 걸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한 일본드라마와 달리 지금까지의 <로열패밀리>는 판이한 제목만큼 다르게 전개되었다. <인간의 증명>이 36년의 세월과 현해탄을 건너 <로열패밀리>가 되는 동안 남은 것은 무엇이고 변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통해 <로열패밀리>가 왜 <인간의 증명>을 원작으로 삼았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에 보탬이 될 가이드다.
김인숙이 <로열패밀리>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라면 <인간의 증명>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다루는 만큼 주인공을 특정하기 어렵다. 또한 김인숙과 공순호를 중심으로 JK가 여자들이 서사의 주축이었던 <로열 패밀리>와 달리 <인간의 증명>은 무네스에, 켄 슈프탄 등 남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야스기 쿄코-김인숙 기댈 친정도, 배경도 없어 18년간 K라 불리며 온갖 수모를 당한 <로열패밀리>의 김인숙과 달리 <인간의 증명>의 야스기 쿄코는 한창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정문제 평론가이자 유력 정치인의 아내다. 김인숙과 달리 소설에서 야스기 쿄코는 오히려 대상화되어 묘사된다. 특히 시청자가 김인숙이 겪는 고난을 통해 그녀를 연민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야스기 쿄코의 입장은 단편적으로 서술되어 감정 이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무네스에-한지훈<인간의 증명>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무네스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미군 병사에게 희롱 당하는 여성을 돕다 죽은 경험으로 인해 인간불신에 빠져 있다. 한지훈 검사와 김인숙처럼 서로를 구원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무네스에와 야스기 쿄코 역시 과거 어떤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
켄 슈프탄-공순호 켄 슈프탄 형사와 공순호 회장은 각각 소설과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다만, 조니 살해사건의 미국 측 수사관인 켄 슈프탄이나 JK그룹의 회장 공순호 둘 다 작중 서사의 중요한 축을 지탱할 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로열패밀리>는 추리소설인 원작과 마찬가지로 미스터리가 작품 전체를 지탱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 김도훈 감독이 밝혔듯이 “재벌가 내 특정인물들의 투쟁기”로 시작했다. 이 암투극은 김인숙의 복수극으로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한지훈과 김인숙의 멜로 코드가 깔려 있다. 반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사회 현실 그 자체가 주인공인 사회파 추리소설인 <인간의 증명>은 두 개의 사건을 네 가지 시점으로 교차해 보여주는 정교한 추리극인 동시에 내면에 치명적인 상처를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극이다.
지금까지 <로열패밀리>의 주요 서사는 2011년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기형아인 재벌가와 정면승부를 선언한 한 여자의 투쟁기였다. <인간의 증명>의 배경은 전후 혼란을 극복하고 고도의 경제 성장이 시작된 1970년대의 일본이다. 소설은 그 과정에서 발아한 물질만능, 인간소외, 모럴 해저드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과 그로 인해 병들어 가는 인간의 자화상을 그린다.
조니 헤이워드 살해 사건은 <로열패밀리>가 <인간의 증명>에서 가장 크게 빌려온 설정이다. 극 중반까지 원작과 닮은 점을 찾기 어려웠던 <로열패밀리>는 김인숙을 찾아 온 혼혈아 조니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면서 <인간의 증명>의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곰인형-밀짚모자<로열패밀리>의 곰인형은 고아 한지훈과 그를 구원한 천사 김인숙, 두 사람의 신뢰를 상징하는 동시에 조니와 얽힌 김인숙의 숨겨진 과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다. 원작의 곰인형은 <로열패밀리>와 달리 조니 살해 사건과는 관련이 없지만, 코오리 쿄헤이(야스기 쿄코의 아들)의 애장품으로 야스기 쿄코가 쓴 가면을 폭로하는 결정적 소품이다. 사이조 야소의 시 ‘밀짚모자’는 원작에만 등장하지만 작중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증명> 제목 그대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역설하는 주요 모티브다. 모리무라 세이치가 작품을 집필한 계기라고 밝힌 이 시가 있었기에 지금의 <로열패밀리>도 있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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