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 기부가 봄을 부른다

이인실 통계청장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꽃샘 추위가 봄을 시샘하기도 하지만 늘 그랬듯이 자연은 어김 없이 우리 앞에 봄날을 선사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전세난과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서민들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만큼 딱 들어 맞는 말이 없을 것이다. 법정 스님께서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루는 것이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고물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우리 앞에 아직 봄을 알리는 꽃은 피어나지 않고 있다. 매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는 기관장의 입장에서 물가 관련 통계수치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글로벌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물가는 완벽하게 관리가 어려운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쟁으로 고유가 상황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기후 변화로 인한 곡물 수급의 불안도 물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구제역 여파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치솟는 물가로 모든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특히 소외계층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식품을 기부 받아 홀몸 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푸드뱅크'의 경우에도 물가 폭등으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외된 이웃에게는 고물가로 인한 체감 추위로 여전히 한겨울이다. 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웃의 아픔을 걱정하고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의 비율은 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0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경기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사회복지단체 등에 후원금(기부금)을 낸 사람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09년에는 32.3%에 달했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의 비율도 2006년 14.3%에서 2009년에는 19.3%로 5% 포인트가 늘어났다. 사회 전반적으로 나눔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기부한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를 보면서 우리는 기부 선진국을 부러워했다. 나눔과 기부의 문화는 유유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전통이기도 하다. 지난해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조선시대 제주의 거상 김만덕은 1790년부터 1794년까지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조정의 구호미가 풍랑에 휩쓸리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산 쌀을 구휼미로 보냈다. 어려울 때 서민들은 향약과 두레, 품앗이 등으로 서로를 도왔고, 부자들은 빈민들에게 곳간을 열었다. 사회지표 통계는 이런 나눔과 기부 문화의 전통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기부주기, 기부유형, 기부 경로별 기부금액 등을 살피는 나눔 문화 통계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분석할 예정이다. 최근 기부의 경향을 보면 젊은 층의 기부가 늘고 기부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기부의 형태도 선보이고 있고, 올 2월 제주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꽃다발 대신 쌀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를 했다. 결혼식을 하면서 축의금 대신 쌀을 받아 기부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TV에서 어려운 이웃의 사연이 소개되면 눈물을 훔치면서 자동응답기(ARS) 전화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이젠 일상이 됐다. 모두 피플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워런 버핏을 포함한 많은 기부자들이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기부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을 전파하는 기부 바이러스가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더욱 확산되기를 바란다.이인실 통계청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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