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 反기업정서 재등장한 까닭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는 "요즘에는 대기업 다니는 게 무슨 죄짓는 것 같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사연인 즉 이렇다. 동창회에 갔을 때다. 술이 한순배 돌아가자 한 친구가 "니네 회사 제품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대뜸 물어온 것. "품질이 좋잖아"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의 가격결정에는 품질은 물론 브랜드 가치, 희소성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니네 회사는 잘 나가지, 하기야 중소기업 등골 빼먹고 있는데…." 그는 이 대목에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벌이고 있는 각종 상생활동을 설명하고 싶었는데 대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아쉬워했다. 최근 들어 정부가 물가안정, 동반성장을 이유로 대기업들을 몰아붙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동안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국민여론을 좌지우지 해온 것이다. 대우사태 등으로 외환위기를 거치는 동안 기업이 나라를 거덜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나타난 반기업정서는 노무현정부 시절 초반까지 심화됐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기업이 국가의 경쟁력이다"는 발언 이후 다소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노무현 정부 기간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조사한 기업호감도 지수는 2006년 하반기를 제외하고 재임 기간 내내 50점(100점)을 넘지 못했다. 이후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하면서 기업의 인기가 최절정에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속에서도 위기를 훌륭히 극복해낸 우리 기업이었기에 반기업 정서가 자리 잡을 틈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지난해 말 이후 서민경제와 중소기업을 겨냥한 물가안정과 동반성장으로 선회하면서 3년 만에 반기업정서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정부는 물가인상 주범 중 하나로 기업의 폭리를 꼽았다. 아울러 동반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대기업을 지목했다. 해당 기업들은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상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겉으로는 날을 세우지 않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정부와 대기업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임기 2년을 채 남겨두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레임덕이 없다고 강조하고, 대기업은 2년 만, 아니 1년 만 무난히 버티려 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지속될 경우 서민이나 중소기업이 보는 대기업에 대한 시각은 따가워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폭리를 취하고 동반성장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대기업은 어떤가. 만족할 만한 수준는 아니지만 사회공헌 등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30대 그룹의 대중소기업 지원 예산도 지난해보다 24.9% 늘어난 1조원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만족할 수 없다며 매를 들고 있다. 반기업정서가 심화되면 대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성장잠재력이 훼손되며, 대기업 근무자의 사기가 저하된다. 이는 곧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반기업정서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경우 정부 역시 반기업정서 심화의 빌미를 줬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의 물가안정이나 구체적 윤곽도 잡지 못한 동반성장보다는 멀리 보는 중장기적인 정책수립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당장 매를 대기보다 다독여주고 이를 독려하는 것은 어떨까.노종섭 산업부장 njsub@<ⓒ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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