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공장 만든 분당 이매중학교 과학교실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창의 영토를 넓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학교 교실이다. '어려움에 처해봐야 창의성이 튀어나온다'는 걸 잘 보여주는 곳이 있다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지식주입에서 탈피해 문제상황을 해결하면서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공간으로 변신한 교실, '정답 없는 실험'으로 곤란에 빠진 아이들을 만나러 분당 이매중학교의 과학교실을 찾아갔다. 요리책대로 요리하면 무난한 맛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독창적인 레시피는 나오지 않는다. 과학 실험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실험을 그대로 따라하면 지식은 배울 수 있지만, 창의성이 길러지진 않는다. 고추장 스파게티나 라이스 버거 같이 요리책에 없는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 듯, 이매중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벗어나 좌충우돌하며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매중 2학년 고찬혁 학생과 김현수 학생이 식물공장을 만들기 위한 스티로폼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열과 빛을 차단하는 스티로폼 모형 안에는 LED조명을 설치했고, 이 안에서 조명과 배양액으로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이 도전한 첫번째 호기심은 '영하 40도의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에서도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면? '이었다. 상상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해 남극으로 보낸 식물공장에서는 이미 매일 1㎏정도의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연구원 한 사람이 하루에 50g의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자연을 완벽하게 아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화산이 폭발하는 천재지변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잖아요. 식물공장을 만들 수 있다면 자연재해나 극한의 환경에서도 필요한 식량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매중 2학년인 찬혁이와 현수도 이런 생각을 품고 '식물공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렇다면 겨우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햇빛도 흙도 없이 식물을 키우는 식물공장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찬혁이와 현수는 "오히려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며 실험과정에서 겪은 문제 상황과 이를 해결해나간 과정을 들려줬다. 첫 번째 해결 과제는 '배양액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였다. 식물공장에서 식물을 키우려면 빛과 흙을 대신할 발광다이오드(LED)조명과 배양액이 필요하다. 배양액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들을 물과 적당한 비율로 섞은 액체를 말한다. 이들이 교과서나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여기까지였다. LED조명은 인터넷 주문으로 구할 수 있지만, 배양액은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꽃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농가에 찾아가 배양액을 찾았지만 돌아온 건 "그런 건 안 만든다"는 대답뿐이었다. 찬혁이는 "정해진 답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할 땐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작정 농업기술센터로 찾아갔다. 사전에 약속도 잡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추천받은 비료가루를 500배 희석해서 배양액을 만들어 냈다. 찬혁이와 현수는 "막막하고 답답하니까 자꾸 이런 저런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며 "만약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양액을 만들기 위해서 비료의 양을 재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알려준 비료를 물에 섞어 배양액을 만들고 있다.
이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건 몇몇 과학 지식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걸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내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준비를 끝내고 식물공장 만들기에 착수한 이들에게 닥친 또 다른 문제상황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나온 실험 결과'였다. 언제나 옳은 가설 아래 실수만 하지 않으면 정해진 결과를 얻는 실험만 해온 이들에게 '틀렸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식물공장을 만들면서 "어떤 환경에서 식물이 가장 잘 자라나?"를 알아보기 위해 빛의 파장, 빛을 쬐는 시간, 빛의 세기 등을 달리하면서 파피루스를 배양액에 넣고 2주일간 키웠다. 실험을 시작한지 3일, 일주일, 2주일마다 파피루스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던 이들은 최종 결과를 마주하고 당황했다.
식물공장에서 키울 파피루스를 손질하고 있다.
이들이 세운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빛을 쬐는 시간이 길수록, 빛의 세기가 셀수록 식물은 빨리 자랄 것이다'라는 가설 중 마지막 하나가 정반대로 나온 것이다. 2주간의 실험에서 파피루스는 LED조명의 개수가 1개일 때 5.5㎝, 2개일 때 3.3㎝, 3개일 때 1.6㎝만큼 자라 조명의 세기와 식물의 생장이 반비례하는 결과가 나왔다. 뜻밖의 결과에 대해 찬혁이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틀린 가설에 대해 "빛의 세기가 셀수록 식물의 성장이 빨라야겠지만 조명의 개수가 1개일 때 이미 광포화점을 넘은 듯 하다"며 "조명의 개수가 증가할수록 온도가 올라가서 식물의 성장속도가 오히려 저하된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해 실험보고서에 적어 넣었다. 찬혁이와 현수가 배운 것은 식물의 구조, 생장조건과 같은 과학 지식만이 아니었다. "하다가 막히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내 생각이 닿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았어요." 막 다른 골목에 다다른 절박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보이듯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김명희 교사는 "한번에 2시간씩 진행하는 블록타임제를 활용해 탐구주제에 대해 피드백해주고, 각자 한 편의 보고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한 학기동안 준비한 실험보고서는 반별로 발표회를 열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무지방 우유와 고칼슘 우유는 왜 요거트로 만들기 어려울까?' '시중에 파는 생수는 왜 맛이 다를까?' 아이들은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지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각자 자신만의 창의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이상미 기자 ysm1250@ⓒ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