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시골학교들..'마을까지 사라지면 어떡하나'

<strong>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조제분교의 올해 졸업생은 단 1명뿐이다. 박지연(13)양이 그 주인공이다. 지연이를 마지막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 김삿갓면에는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흥겨운 마을잔치로 기억되던 시골 학교의 졸업식이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는 고별식장으로 변한 것이다. 1인 졸업식을 끝으로 마을은 생기를 잃고 있었다. 졸업생이 2~3명 밖에 되지 않는 다른 마을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만 간다. 도시가 '알몸 졸업식'으로 홍역을 앓는 사이 '1인 졸업식'이 열리는 마을들을 본지 기자들이 찾아가봤다. '1인 졸업식'을 통해 마을이 쓰러져가는 이유를 찾아보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난 14일부터 3부작으로 싣고 있다.<2>가속화되는 소규모학교 통폐합.."농촌도시 학교·마을 전부 사라질 판"</strong>[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입학할 아이가 1명이라도 있으면 폐교하지 않으려 했다"지난 11일 이동현(13) 군의 '1인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되는 강원도 횡성군 부곡분교의 본교인 강림초등학교 정재영 교장은 졸업식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정 교장은 "학부모나 지자체 관계자들과 함께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부곡분교 폐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곡분교에서 쓸쓸하게 공부할 아이들이 강림초교로 오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 교장은 "통폐합을 하면 10억원을 지원 받는다. 이 돈을 본교에 투입하면 아이들이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연식 강림우체국장은 "폐교하지 않으면 학부모나 학생들한테 손해일 수 있다"면서 "아이들도 거의 없는 작은 학교에 들어가는 예산을 모아 본교에 쓰는 게 더 낫다. 스쿨버스 등 혜택도 많지 않냐"고 주장했다.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 소재 마차초등학교 문곡분교의 지난해 4월 국어수업 장면. 이 학교 학생은 6학년 3명, 4학년 1명 등 모두 4명 뿐이다. 문곡분교가 오는 18일 마지막 졸업식에서 6학년 3명을 졸업시킨 뒤 수십년 역사를 뒤로하고 28일 폐교되면 문곡리에서 초등학생들의 수업 장면도 영영 사라지게 된다.<br />

교육 효율성을 감안하면 이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학교를 잃은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오는 18일 졸업생 3명의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되는 영월군 문곡리 마차초등학교 문곡분교 엄일섭(58ㆍ남ㆍ문곡분교 32회 졸업) 주사는 자신이 문곡분교에 다닐 때 학생은 500명이 넘었고 처음 발령받은 1982년에도 학생이 250명은 됐다며 아쉬워했다. 엄씨는 문곡분교 역사가 곧 마을의 역사라고 했다. 학교와 마을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동시에 지켜봐온 엄씨는 "모교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길 바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엄씨 등 모두 600명이 소속된 문곡분교 동문회까지 나서 학교를 살려보려 했지만 폐교를 막을 수가 없었다.35세 때 2남3녀를 이끌고 문곡리에 정착한 이동화(77) 할머니는 세 딸을 문곡분교에서 졸업시켰다. 이 할머니는 "이 동네에는 환자나 곧 죽을 사람밖에 없다"면서 "돈 벌어먹을 게 있어야 사람이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도 시골에서 살기 싫다고 서울로 가서 오지도 않는다. 자기들 다닌 학교도 없어질 판인 고향에 누가 돌아오고 싶겠느냐"며 한숨 지었다. 엄씨와 이 할머니의 얘기는 이 마을에서 학교와 아이들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줬다.학교를 잃은 주민들은 "통폐합 정책만 밀어붙이면 아이들이 사라져 희망을 잃는 마을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점학교들마저 폐교 위기에 처한 마당에 소규모 학교를 안 살리고 계속 통폐합만 하면 지방 소도시에서 학교가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다. 우려는 수치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문곡분교를 흡수하는 마차초등학교는 올해 9명을 졸업시킨다. 입학할 아이는 없다. 마차중학교는 9명이 입학할 예정이고 11명을 졸업시킨다. 마차고등학교는 8명 입학 예정, 12명 졸업 예정이다. 횡성군의 경우 2008년 기준 5~9세 예비 취학아동 수가 2002년 대비 33.4% 감소했다. 반면 노인들은 크게 증가해 50~54세가 69.3%, 90~94세는 61.1% 늘었다. 입학생보다 졸업생이 많거나 입학생이 아예 없고 취학아동 수 자체가 급격히 줄어드는 마당에 거점 초ㆍ중ㆍ고교가 명맥을 오래 이어가주길 기대하긴 어렵다. 강원도만의 얘기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의 본교와 분교 381개가 문을 닫는 등 통폐합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시골 소규모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사람'을 배우는 전인교육의 가치도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문곡분교와 마찬가지로 곧 폐교되는 영월 김삿갓면 조제분교의 본교인 옥동초교 학부모회장 박주희(45ㆍ여)씨는 "시골 소규모 학교에선 소비위주의 도시 문화에서 벗어나 자연을 접하고 사람과 친밀해지는 정서교육이 가능하다"면서 조제분교 폐교를 아쉬워했다. 횡성 강림면 부곡분교의 값진 교육 시스템도 자칫 사라져버릴 판이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졸업 전까지 양악기 1개와 국악기 1개 이상을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논술 등 입시와 직결되는 글쓰기 교육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도시에서 이 정도 가르치려면 보통 100만원 가까이 든다. 부곡분교와 합쳐지는 강림초교에서도 이런 교육이 이뤄진다지만 지금처럼 농촌이 황폐화돼 아이들이 계속 빠져나간다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팀 = 김효진ㆍ김도형 기자 hjn2529@, 김현희ㆍ박은희ㆍ오주연ㆍ이민아ㆍ정준영ㆍ조목인ㆍ조유진 인턴기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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