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권오중의 봉사스토리 '배우는 보너스에 불과하죠'

연기자 권오중씨가 지난 달 27일 저녁 서울사이버대 차이코프스키홀에서 후배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피아노 치는 관장의 유혹에 꼬마들이 들썩거리고 동네 아줌마들이 환호를 한다. 그의 이름은 김관장. 쿵후도장을 새로 차려 기존 학원들을 아연실색하게 하는 장본인이다. 박성균 감독이 2007년 제작한 영화 <김관장vs김관장vs김관장>에 나오는 이 역할을 재미있게 소화해 낸 이가 바로 배우 권오중이다.배우로서 한길만 걷다보니 소홀했던 것일까. 10살짜리 외동아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툭하면 몸저 눕기 시작했다. 원인은 먹거리에 있었다. 마침 드라마 <식객>을 준비 중이던 권씨는 아들을 위한 특별한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다. 이때 얻은 경험으로 유기농 식단 위주의 '아빠가 들려주는 건강밥상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Good Eats'(시드페이퍼)를 냈다. 지난 여름의 일이다. 그런 그가 약자에 대한 관심을 아들뿐만 아니라 세상 밖까지 넓히게 된 것이 '사회복지사'의 길이다. "배우는 보너스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제 봉사자 권오중으로 살고 있습니다. 죽은 바퀴벌레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좁은 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다보니 사회복지사가 제게 천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7일부터 시작하는 MBC 특별기획드라마 '짝패' 촬영에 바쁘다는 권씨는 지난달 서울사이버대(www.iscu.ac.kr, 총장 이재웅) 대학원 사회복지 석사과정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는 3년 전 서울 신당동 옥탑방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집을 고쳐주기 위해 찾은 그곳에는 성인 남성 세 명과 초등학교 여자아이 한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4.5평 좁은 방에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빨지 않아 썩어가는 옷이 쌓여있었다. 옷을 버리는데 10ℓ들이 쓰레기 봉투가 가득 찰 만큼 죽은 바퀴벌레가 나왔다.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같은 건물 1~4층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이 집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권 씨는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삶을 많이 봐왔다"면서 "체계적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겠다는 마음을 그때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봉사에 나설수록 배우로서 자신감도 더해갔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도우면서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법도 익히게 됐다. <김관장vs김관장vs김관장>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된 것도 서울사이버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하던 2007년 그 해였다. 권오중씨는 재학 당시 바쁜 활동 속에서도 학업성적 장학금을 받을 만큼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졸업과 함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권씨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만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라며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꿈 꿀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그 감사를 사회에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요즘도 매주 3시간 거리를 달려 포천으로 목욕봉사를 다닌다. 2002년 자원 봉사단체 '천사를 돕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해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권 씨는 "불편한 분들의 구석구석을 씻겨드리면서 사실은 자신이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도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사)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사)희망의 러브하우스,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보건복지부위탁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등 사회복지관련 단체라면 홍보대사 맡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7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가방'이 떠올랐다. 권오중 자신이 주연한 이 영화에는 영국의 어느 선교단체 지하 창고에 70년 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가방이 등장한다. 권 씨의 말대로 가방 안에는 박사학위증, 의사면허증처럼 안정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홍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권씨는 지난 27일 밤 서울사이버대에 특별히 초청됐다. 배우 권오중씨는 이날 밤 뜻을 같이하는 후배 100여명에게 사회복지사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걸어가야 할 삶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사회복지학과 1학년 진치훈(29)씨는 "배우이자 선배인 권오중씨가 가진 열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면서 "그 동안 사회복지학을 학문으로만 대해온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김도형 기자 kuerte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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