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후폭풍, 도매상서 소비자까지 ‘사재기’

출하중지·도축장 잇단 폐쇄로 가격 오르며 설 앞두고 “더 오르기 전에 사놓자”

구제역 여파로 쇠고기, 돼지고기 값이 많이 오르며 마장동 도매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었다.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대전시 서구 둔산동의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 주부 김향숙(38·갈마동)씨는 사골, 찌개, 국거리용으로 30만원 가까이 한우를 샀다. 평소 사 먹던 양보다 세 배가 넘는 돈을 썼다. 김씨는 “소를 살처분하면서 고기 값이 많이 오른다는 말이 도는데 설명절 땐 많이 비싸질 거라고 주위에서 말하니까 냉장보관하더라도 쌀 때 사놔야 한다”고 말했다.주부 박진숙(44·월평동)씨도 “남편이 장손이라 제삿상 차리고 손님을 맞으려면 고기가 많이 필요해 나왔다”면서 “고기 값이 많이 올라 걱정인데 할인한다고 해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우와 돼지고기 값이 계속 올라 설을 앞둔 소비자들이 더 오르기 전에 사놓자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형마트들이 앞다퉈 할인행사에 나서며 이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롯데마트는 정상 값보다 50% 싸게 내놓은 ‘LA갈비’ 250t이 13일까지 팔 예정이었지만 9일 모두 바닥났다. 홈플러스도 100g당 1000원으로 12일까지 할인행사에 들어간 삼겹살 120t이 나흘 만에 다 팔렸다. 내달 5일까지 한우를 최대 25% 할인판매하는 이마트는 벌써 60여t을 팔았다. 대형마트 정육코너는 할인행사로 사람들이 몰리지만 동네정육점은 고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제역 발생지역 농가들의 출하가 전면 금지되고 도축장들까지 임시폐쇄되면서 고기를 받지 못하게 된 도매상들이 ‘휴업’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대형마트에서 10kg(약 40인분)의 돼지고기를 산 조재영(47·둔산동)씨는 “식당을 하는데 육가공업체에서 돼지고기를 주문한 만큼 못 대준다고 해 대전 오정동 도축시장까지 갔다가 마땅한 고기가 없어서 마트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가 거래한 논산의 육가공업체가 주문량을 맞출 수 없다고 해 다른 업체를 찾아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게다가 육가공업체들이 육류 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사재기와 함께 공급을 조절, 값이 오르는 이중고까지 겪고 있다. 이런 모습은 전국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경기도 평택시에서 정육점을 하는 정인수(55)씨는 “육가공업체서 고기를 안 줘서 창고까지 찾아갔다. 거긴 고기가 가득했는데 지금 나갈 물량이 아니라고 해 화가 났다”면서 “몇 년 전 구제역때처럼 도매상들의 사재기 횡포가 시작된 것 같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육가공업체들도 어려움은 있다. 충북에선 최근 구제역이 번지면서 냉장보관창고의 물량이 크게 줄어 물량확보에 사활이 걸렸다.구제역이 번지지 않은 전라도나 제주도까지 다녀왔지만 고기를 구하기가 쉽잖다.육가공업체 강모(45)씨는 “돼지고기값이 계속해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현지에서 이전에 했던 계약을 파기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며 “일부 업자들의 마구잡이식 사재기로 물량확보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이영철 기자 panpanyz@<ⓒ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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