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공리주의와 삼성안티팬들의 평등주의에 기초한 '자격' 충돌..철학적 분노 해결 필요
이건희 전 삼성회장(가운데)은 지난 1월 9일(현지시간)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왼쪽),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오른쪽),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왼쪽 뒷편), 부인인 홍라희여사(오른쪽 뒷편) 등 전 가족을 대동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0' 전시장을 찾았다.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작년 12월 사장으로 승진했고 두 딸, 이부진 에버랜드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도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하자 삼성의 3세 경영에 대한 논란이 트위터 등에서 새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트위터에는 ‘북한에 김정은이 있다면 남한에는 이재용이 있다’라는 글을 오를 정도로 일부 삼성 안티팬들은 경영 3세 세습에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기도 한다.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정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책이다.삼성 안티팬들이 보여주는 삼성 3세 경영에 대한 반감은 ‘정의’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한마디로 경영세습이 정의사회구현에 역주행한다는 주장이다.‘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온 철학자들과 샌델 교수의 말을 빌어 삼성의 3세 경영과 그에 대한 분노를 짚어보자.이 책에서 삼성의 3세 세습과 가장 어울리는 챕터는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아리스토텔레스’ 다.샌델 교수는 한가지 예시를 든다.캘리라는 장애인 학생이 한 대학의 치어리더단에서 활동하면서 큰 인기를 끌자 장애가 없는 치어리더의 한 부모가 강력히 분노해 캘리를 치어리더에서 쫓아내려고 한다.샌델 교수는 이에 대해 “그의 분노는 캘리가 자격도 없이 영광을 누린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풀이했다. 영광을 얻을 자격이 없는, 즉 휠체어에 앉아 점프도 못하고 체조도 못하는 캘리가 일반 치어리더들보다 더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나온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가장 좋은 플루트는 빈부, 계층, 외모 등에 관계없이 연주를 가장 잘 하는 음악가에게 돌아가야 플루트의 기본목적, 즉 잘 연주돼야 한다는 플루트의 존재 이유에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삼성의 3세 경영에 대한 반감은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는 이건희 회장의 부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을 권리(태어날 때 이미 결정난)는 있지만 그룹 총수(경영인)로서의 검증된 ‘자격’없이 42세의 나이에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사장에 올랐다는데 삼성 안티팬들은 분노하는 것이다.샌델 교수의 말대로 도덕적 자격과 합법적 권리의 충돌은 ‘정의’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다.예를 들자면 만약 복권에 당첨됐다면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당첨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복권은 단순한 확률게임일 뿐 미덕이나 실력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6강 평등옹호)불법 경영승계문제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다. 이 문제는 법적판단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안티 삼성팬들에 마음속에 깊게 자리잡은 정의에 기초한 철학적 분노와 반감, 역정 등은 해결방법이 달라야 한다.삼성의 3세경영 주장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철칙으로 삼는 ‘공리주의’철학적 자세다.오너 일가가 그룹을 경영할 때 회사가 더욱 안정되고 과감한 투자도 빠르게 할 수 있으며 미래를 위한 장기적 차원에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적이 좋아지면 다시 투자가 늘고 고용이 증가하고 많은 이들이 삼성과 삼성 계열사, 협력사들로부터 급여을 받아가고 이는 다시 경제에 활력을 준다. 최대 행복론 원칙이다.안티삼성팬들의 철학은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평등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 분석된다.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책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소득과 부의 분배가 역사적, 사회적 우연으로 결정돼서는 안 되듯이 타고난 자산에 따라 결정돼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종합해 보자면 안티삼성팬들은 자격없는 사람이 단지 태생적 우연을 기반으로 초고속 승진해 총수의 자리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삼성 고위관계자는 지난 12월 임원 승진자 발표 현장에서 ‘이재용 사장 승진자’의 업적을 설명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승진자의 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나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그룹 오너의 장남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향후 총수에 오를 3세라면 최소한 이해가능차원의 설명은 부연됐어야 했다는 주장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안티삼성팬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법이 아니라 철학적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 온전한 삼성의 몫이다.박성호 기자 vicman1203@<ⓒ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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