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어린 환자들의 희망 '병원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의 모습. 7명의 학생들과 7명의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이날 2시간 동안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학교 측의 요청으로 학생과 보호자의 성명은 가명을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지난 19일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병원 5층에는 어린이병원학교 ‘늘푸른교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학교와 달리 일요일에도 아주 특별한 미술수업이 열려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오후 2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 15분 가량 일찍 교실을 찾아 온 미진이(5)와 미소(3)가 블록놀이에 한창이다. 둘은 자매다. 생후 16개월인 동생 미송이가 아파서 함께 병원에 있다. 수업이 열리면 자매는 장난감과 인형이 있는 ‘늘푸른교실’에서 어김없이 논다. 조금 일찍 교실에 온 선생님이 많이 반가운 기색이다. 미진이는 함께 블록놀이를 하자고 조르고 미소는 안아달라고 매달린다.크리스마스를 앞둔 이날 미술 수업 주제는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수업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7명이다. 대부분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이고 미진이와 미소처럼 동생이 입원하고 있어서 병원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어린이병원학교에선 이들을 어린보호자라고 한다)도 있다. 몸이 성치 않은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과 학생들의 숫자는 7명으로 똑같다. 선생님 한명 한명이 아이들과 도와가며 카드를 만든다. 혜진이(6)는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어 승모판 성형술을 받아야한다. 2년 전에도 7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업 내내 혜진이는 그늘이 없다. 수업은 2시간이지만 혜진이는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벌써 카드를 만들었다. ‘엄마 사랑해요 LOVE ♡’라고 썼다. “선생님 카드 가져다 드리고 올게요” 혜진이는 바로 옆 병실의 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카드를 받아든 박수연(36)씨는 “병원에 와서도 이렇게 밝게 수업 받는 모습이 예쁘다”면서 “걱정은 돼지만 성공적으로 수술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이날 교실에는 내내 웃음이 흘렀다. 두 시간여 진행된 수업 시간 내내 쉬는 시간은 따로 없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린이병원학교에서는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날 수업에서는 현정이(15)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했다. 현정이는 간질을 앓고 있다. 선생님들이 교실의 비상전화벨을 누르자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이 달려와 수업 중이던 현정이를 데려갔다. 선생님들 얼굴에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그런데 30분쯤 지났을까. 현정이가 돌아왔다. 현정이는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면서도 “만들던 카드를 끝까지 만들고 싶었다”며 수업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카드를 만들었다. 현정이와 함께 카드를 만들던 오광식 선생님(28)의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현정이는 ‘HAPPY NEW YEAR’라고 썼다. 병원학교에는 이미 ‘행복한 새해’가 가득 찾아오고 있었다.

지난 19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에서 현정이(15,가명)가 오광식 선생님(28)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있다.

어린이 병원학교에는 시험도 없고 사랑의 매도 없다. 수업에 빠져도 아무도 혼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 병원학교의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순천 봉화초등학교 6학년인 성철이는 4일 뒤에 인공 심장판막 수술이 예정돼 있다. 성철이는 “얼른 수술 잘 받고 학교로 돌아갈래요”라며 웃었다. 소현(12)이는 어제 입원했지만 벌써 “빨리 학교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춘천초등학교 5학년 2반에서 친구들이 30명이나 기다리고 있단다.3주 전에 늘푸른교실에서 만난 서윤(18)이는 “하루 빨리 건강해져서 학교에 가고 싶당 집에도 가구...”라는 글을 수액 주머니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김명철 선생님은 “병원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다보니 아이들이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고 특히 친구와 선생님이 기다리는 학교를 많이 그리워한다”고 말했다.교실에서는 매일 수업이 있다. 국어, 영어, 수학, 미술, 역사 등의 수업이 열린다.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전·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대학원생 봉사자들이다. 서울대 사범대, 중앙대 등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도 학기마다 10여명 정도 신청해 30시간씩 수업을 진행한다. 미술치료 수업은 서울여대 전문치료 대학원생들이 해당 학과 교수의 지도 아래서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키즈 유나이티드(K.I.D.S. United)’란 이름의 어린이 병원학교 자원봉사단체에서는 5개의 팀을 꾸려 영어, 수학·과학, 종이접기, 미술 수업을 맡고 있다. 이날 미술수업은 키즈 유나이티드의 일요일 미술반팀이 진행했다. 일요일 미술반팀은 모두 8명이고 미술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섞여있다. 팀장 정윤선 선생님(25)은 미술을 전공했다. 지난해 6월부터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게 좋아서 활동한단다. 봉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일이라고 얘기한다.정 선생님은 “지난해까진 학생이었고 올해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사실 입사하기 전 연수원 시절에는 주말마다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힘든 것들을 풀어놓고 에너지를 채워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병원학교에서 치료하고 가는 것 같다는 얘기다. 그녀는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분명히,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다”며 웃었다. 가천의대 간호학과 3학년인 박영훈 선생님(28)은 “아동병원 간호사를 꿈꾸고 있는데 활동하면서 아이들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직접 생활하며 배웠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그리는 날에 한 아이가 그린 그림을 잊을 수 없다. 의사를 꿈꾸는 12살 아이였는데 X-레이 그림까지 자세하게 그리고 의사의 책상에는 ‘암’이라는 글자도 썼다. 하지만 나중에는 암이란 글자도 지우고 울상이던 환자의 표정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더라”고 말했다.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치료하는 그 과정을 그렸던 것 같다는 게 박 선생님의 해석이다. 정 선생님과 박 선생님은 핸드폰을 꺼내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함께 보며 얘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얘, 기억나요?” “네, 처음엔 정말 웃지도 않고 표정이 너무 어두웠는데 겨우 두 주 수업하고는 금새 또 밝아졌죠. 퇴원한 것 같은데 잘 지내나 모르겠어요” 정 선생님은 오늘 함께 카드를 만들었던 혜진이가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 오늘 같이 수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마음에 자신이 오히려 고마웠다는 얘기도 들려줬다.교실에서 수업이 한참인 오후 3시 무렵 올라간 7층의 병실. 미진이와 미소의 동생 미송이가 입원해 있다. 미송이와 같은 침상에서 어머니 김선덕(36)씨가 곤히 잠들어 있다. 미진이와 미소가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들을 때가 김선덕씨의 소중한 휴식 시간이다. 그녀는 “조산아로 태어난 막내 미송이가 선천성 후두연하증과 위무력증을 앓고 있어 지난 7월부터 입원해 있다”면서 “우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서울대병원에 감사하고 특히 어린이 병원학교가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다섯 살인 미진이는 주중에는 대학로의 어린이집을 다니고 주말에는 병원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김선덕씨는 아직 어린 미소는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왠만하면 데리고 있지만 주말에는 가끔 어린이병원학교에 보내기도 한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어린이 병원학교가 없었다면 주말에 잠시라도 병원 밖을 다녀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교실이 자리잡고 있는 5층의 간호사 김미라씨(36)는 “다른 병동 아이들이 시간 맞춰 교실 앞에 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모습도 자주 본다”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병실에서 답답하게 지내는 아이들에게 활기를 줄 수 있어서 치료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김도형 기자 kuerte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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