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두산아트센터 기념식 개최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기업과 우리나라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지난 1973년 7월11일. 대한상공회의소 8대 회장으로 연임된 연강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사진)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그 뒤 1개월도 채 못 된 8월 4일, 그는 63세로 타계했다. 박두병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업과 나라경제를 위해 몸 바친 우리나라 경영인 1세대였다.오는 6일은 박두병 회장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두산그룹은 지난 1910년 그가 태어난 서울 연지동 자택 터인 두산아트센터에서 기념식을 개최한다.해방과 6.25 전쟁 이후 폐허만 남은 한국에서 국내 최고(最古)기업인 두산그룹을 키워내고, 대외 활동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던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21세기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재계가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평가돼 재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그의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아버지 매헌 박승직 창업주는 박두병 회장에게 박승직 상점 경영을 물려주면서 새 시대에 걸맞는 사명으로 두산상회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박두병 회장 이름의 가운데 자인 '말 두(斗)'자에 '뫼 산(山)'자를 붙인 두산은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투기적인 재화 축적이 아니라 점진적이고도 단계적인 발전을 도모하라는 속뜻도 담겨 있었다. 이를 헤아린 박두병 회장은 순리에 어긋나는 과욕과 무리를 늘 경계하고, 기업을 합리화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데 역점을 뒀다.지난해부터 두산그룹이 실시하고 있는 기업 이미지 광고 캠페인인 '사람이 미래다'는 박두병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는 "하늘이 도움을 주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하고,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인화만 같지 못하다"며 인화를 경영이념으로 정했다. 이미 1950년대에 독일과 미국 등지로 직원을 유학 보낸 것은 그가 인재 중시 경영에 얼마나 일찌감치 눈 떴는지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정직도 중요한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 맥주 사업(현 OB맥주)을 일으킨 후 중화학공업 진출을 추진했던 박두병 회장은 경제정책 자문역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고, 1960년대 중반부터 6년간 외자도입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배경을 활용해 외국 자본을 들여올 수 있었지만 그는 자리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욕을 위해 부정을 저지를 수는 없다는 철학 때문이었다.채명석 기자 oricm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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