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피플&뉴앵글]'호주의 현충일' 그곳에선 무슨일이?

호주에서 매년 4월 25일은 나라를 위해 죽어간 전쟁영웅들의 죽음을 기리는 날이다. 막상 전쟁 영웅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전투에 참여해 국가의 뜻에 따라 목숨을 잃은 수 많은 일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에는 세계 제 1차 대전에서 죽어간 군인들을 기념하는 날이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돼 1차 세계 대전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리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ANZAC 이라는 단어는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Australia and New Zealand Army Corps) 호주 뿐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도 중요한 국가행사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기를 내걸고 전역 군인들의 행진이 벌어지며 시내에서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ANZAC DAY는 갈리폴리 전투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성격을 가지고 생겨나게 됐다. 갈리폴리 전투는 세계 1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옛 오토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점령, 전력을 무력화 시키고 러시아로 향하는 보급라인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행해졌다. 호주, 뉴질랜드 군인들이 주축이 됐으며 그들에게는 전쟁 중에서 가장 의미가 크고 위험한 작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합군에 맞서는 오토만 제국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결국 호주에게 약 9000명, 뉴질랜드에게는 약 2700명의 전사자를 남기게 되며 연합군의 후퇴로 마무리 짓게된다. 이 전투는 호주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일견 9000명이라는 숫자는 많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호주의 적은 인구를 생각해 봤을 때 마을마다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조금 과장해서 예를 들자면 한적한 마을에서는 한집 건너 한집 수준으로 사망자들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추모기운의 열기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호주는 그 당시에 전쟁에 참가할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갈리폴리 전투가 벌어진 1914년은 호주 연방이 생긴지 1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방제 이전에는 호주라는 나라가 아니라 멜번, 시드니 같은 각각의 식민 도시로만 존재 했었던 곳이기 때문에 민족의 유대감도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쟁에 다른 국가와의 이해관계가 크게 얽혀 있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호주는 전쟁에 참가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제대로 된 하나의 국가로 인정 받고 싶어했었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여러가지 정황 역시 호주 군대를 유럽으로 파병하게 만들었겠지만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세계 열강들 사이에서 새로 생긴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정립시킬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리폴리 전투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호주에서 살고 있는 많은 가족들이 비통한 심정에 잠기게 되자 자신들의 경솔했던 판단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호주는 ANZAC DAY를 선포하게 된다. ANZAC DAY의 선포는 단순히 전쟁에 대한 경고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두 국가 사이의 지리적인 동질감, 정서적인 유대감을 더욱 더 강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ANZAC DAY는 세계를 바라보는 호주적 시각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패권주의에서 다소 떨어져서 다소 관망하는 자세의 호주의 모습은 그렇게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그 외에도 ANZAC DAY는 호주 안에서 다른 반전 시위가 이루어지는 날로도 인식되고 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여러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1980년대에는 여권운동가들의 전쟁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자주 목격 됐다. 전쟁폭력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운동이나 최근의 아프간, 동티모르 사태에 반대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사실 요즘 호주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지금의 ANZAC DAY가 가지는 의미는 축제의 날, 국경일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의 어린 친구들 중에서는 갈리폴리 전투에 뉴질랜드 군이 참여한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또 ANZAC DAY는 과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의 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과연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며 특히나 다민족 국가의 경우에 그 의미는 무엇이 되느냐에 대한 논쟁을 낳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ANZAC DAY를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고귀한 생명들을 앗아가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가치판단은 그 이후에 이루어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대한민국의 현충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ANZAC DAY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만할 것이다. 글= 김준용정리= 박종서기자 jspark@asiae.co.kr◇ 부산 출신으로 펑크음악과 B급 영화를 즐기는 김준용 씨는 한국의 도시 소음과 매연을 견디지 못해 도피유학을 결심했다. 딴지 관광청 기자로 재직하면서 필리핀과 호주의 오지만 골라서 돌아다닌 경험도 있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준용 유학생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