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절벽에 꽃을 피운 동강 할미꽃 미녀들의 아름다운 수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한 동강. 이 동강이 흐르는 평창군 미탄면의 작은 산촌마을에 이맘때면 보석같은 꽃향기로 진동한다.암벽 틈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든 꽃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동강의 봄을 열고 있다. 바로 '동강 할미꽃'이다. 1997년 생태사진가에 의해 발견된 희귀종 '동강 할미꽃'은 사는 곳, 꽃 색깔, 피는 모습 모두가 할미꽃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고개를 숙이는 여느 할미꽃과는 달리 깍아지른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꽃을 피워 올리는 자태는 신비감 그 자체다.동강 할미꽃'은 동강 주변의 정선, 영월, 평창의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의 자생 야생화로 3월말부터 4월 초순에 꽃을 피운다. 가장 늦게 봄이 드는 강원도 땅에 살지만 4월 초순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지난주 미탄면 문희마을 김삼용 이장님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봄을 시샘하는 심술궂은 날씨로 예년보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 '동강 할미꽃'이 활짝 피웠다"는 전갈이였다.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1년만의 기다림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동강으로 향했다.처음 '동강 할미꽃'이 발견된 곳은 정선군 귤암마을이였다. 주민들이 '뻥대'라고 부르는 거대한 수직 절벽이 동강 할미꽃의 자생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진작가, 관광객들로 몸쌀을 앓고 있다.그러나 동강을 한 굽이 돌아 있는 평창 문희마을은 아직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그나마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문희마을 지나 강변을 따라가자 '동강 할미꽃 서식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옆으로 백룡동굴 진입로 공사가 한 창이다. 그동안 비공개로 궁금증을 자아냈던 천연기념물 제260호 백룡동굴이 7월이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동굴보존을 위해 예약한 소수의 탐방객들에게만 공개예정이란다.
공사현장을 지나자 깍아지른 절벽이 펼쳐진다. 쏟아질 듯 한 절벽이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동강이 지닌 여유와 푸근함 때문일 것이다. 그 절벽에 자줏빛과 붉은빛 점들이 번지며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1년의 기다림끝에 동강 할미꽃과의 만남은 너무나 황홀했다. 현란한 화려함이 아닌 그저 그러저러한 대지의 바위틈에 불현듯 반짝이는 아름다움이다. 오랫동안 잔영이 남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이름은 할미꽃이지만 전혀 할미꽃이 아닌 수줍은 새색시 마냥 가냘프고 고운 미녀 같은 꽃이다. 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색 꽃이 새벽이슬을 받아 초롱초롱 빛을 내며 하늘 향해 당당하게 그곳에 서 있었다.동강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15cm정도의 보라색 꽃을 피우며 전체에 흰 털이 많다. 잎은 뿌리에서 나는 깃꼴겹 잎으로 작은잎 7~8장으로 이루어진다.요즘 평화롭고 조용한 작은 마을에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동강 할미꽃을 찾아 전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동강 할미꽃'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문희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면서 훼손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예쁜 사진 찍겠다고 쨍쨍한 오후 이슬 맺힌 모습을 연출한다고 멀쩡한 꽃에 물을 뿌리거나 바위 위를 쉼 없이 누비는 사람들을 볼때 마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김 이장은 "척박한 석회암 절벽에서 자라는 동강 할미꽃은 자연이 심어 놓고 가꾼 동강의 보석같은 유산"이라며 "마을주민은 물론 탐방객 모두가 힘을 모아 동강 할미꽃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현재 문희마을에 산재해 있는 '동강 할미꽃'은 약 50여포기 정도. 귤암마을의 800여포기에 비해 턱 없이 적은 숫자지만 보존상태가 좋아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줘 있다.
마을 주민들은 '동강 할미꽃'을 보존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영월 기술센터 등에서 꽃씨를 받아 백룡동굴 진입로 절벽부근에 이식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우리 꽃, 동강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동강 할미꽃'도 활짝 열었던 꽃잎을 서서히 닫는다. 탐방객들로 하 나둘 온 길을 되짚어 나서며 노을속으로 사라진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문희마을 뒤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백운산의 칠족령 전망대에 올라봐도 좋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칠족령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넉넉하다.동강 문희마을(평창)=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여행메모▲가는길=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나와 평창읍을 지나 미탄면 소재지를 벗어나면 천연바위굴 옆에 동강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문희마을까지 10km다.'동강 할미꽃' 축제가 열리는 정선 귤암마을은 평창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비행기재터널을 통과, 7km 가량 가면 광하교다. 이 다리를 지나 강변을 타고 4km 가량 가면 된다. ▲잠잘곳=마하리와 문희마을에는 최근 지은 펜션들이 많다. 특히 진탄나루터 부근 산 중턱 자리한 두룬산방(033-334-0920)은 장엄한 동강의 물줄기를 감상하면서 숙박과 오토캠핑을 할 수 있다. ▲먹거리=송어의 본고장이다. 기화천의 맑고 찬물을 이용해 송어를 양식해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좋다. 선홍빛이 도는 송어회를 그냥 먹거나 각종 야채와 콩고물을 넣고 비벼먹으면 된다. 송어뼈와 껍질을 이용해 끓여내오는 매운탕도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강촌매운탕(033-332-9999)과 기화양어장 등이 잘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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