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는' 회장님에 눈길 가는 이유는?

악수·맞손에 담긴 경영학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1월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왼쪽 첫번째),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왼쪽 세번째)의 손을 잡고 CES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최근 ‘손을 잡는’ 회장님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손을 잡는 행동이 새로운 일은 아닌데, 유독 최근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회장님의 손 잡기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지난해 연말 사면 후 공식 활동을 재개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과거와 달라진 점은 가족들과 손을 잡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지난 5일 서울 순회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 전 회장은 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앞서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0에는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손을 잡고’ 방문했다.2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 재계 1인자가 가족과 함께 손을 잡았다는 사실, 그것도 아들이 아닌 딸과 여동생과 손을 잡은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 특이하다.박용현 두산 회장은 올초 서울지역 각 두산 계열사 사무실을 찾아 임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두산그룹 회장은 통상 새해가 시작되면 계열사를 돌며 전 임직원과 악수를 나누는 것이 전통인데, 한 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가 박 회장의 신년악수를 하는 모습이 오랜만에 그룹 화보에 실렸다. 박 회장은 지난해 회장 부임후 전 세계를 돌면서 현지 직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지속적으로 고객을 찾아가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철강제품 공급망의 최일선에 있는 판매점을 직접 찾아가 업체 사장들과 ‘악수’를 나눴다. 정 회장 이전 포스코 회장들은 대형 고객 또는 대리점 사장들만 만났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상당한 파격이었다.

박용현 두산 회장(오른쪽)이 2010년 신년악수 릴레이 도중 여직원과 올해 매출신장을 약속하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있다.

악수 또는 손을 잡는 행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전적인 인사 수단중 하나다. 고대 시대에 낯선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손을 펴 보였던 것이 악수의 효시라고 한다. 빈손을 보여주는 무기가 없으니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로가 빈손을 마주잡는 것은 싸울 의사가 없고 친구가 되는 표시라는 것이다.리더가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에는 일반인간의 악수와는 다른 의미가 추가된다.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진 일인자가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 자신의 권위가 흔들려 누군가에 의지한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리더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이해관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복종을 확인받고 싶을 때 손을 내민다.그런데, 이 전 회장과 박 회장, 정 회장의 손 잡기는 이러한 리더의 악수와 성격이 달라 보인다. 회사 인지도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아픔을 딛고 새롭게 대중 앞에 나서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리더 자신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미지로 직결된다. 따라서 대중 앞에 보이는 첫 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룹의 브레인들이 다양한 이미지 메이킹 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고민 끝에 리더들이 택한 방법은 손을 내미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을 맞잡고 흔드는 행위는 간단해보여도 사람 심리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고 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손을 맞잡는 행동은 충분히 안정할 수 있는 시간과 일관된 상황이 가미될 경우 다른 사람에게 나의 다른 점을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악수를 나누는 리더의 모습을 본 일반인들은 그에 대한 호감도가 쉽게 호의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가운데)이 지난해 3월 2일 울산 현대중공업 LNG선박 생산현장을 방문해 회사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손을 잡는 방법은 동일하지만 이들이 잡는 상대방의 손은 차이가 있다. 이 전 회장은 일인자로서의 위상을 낮추고 가족과 함께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식들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오너경영체제로 전환, 지주사 출범 후 안정된 지배구조를 정착시켜가면서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두산이 다시 ‘인화’를 키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국내 철강시장의 본격적인 고로 경쟁체제 개막을 앞두고 고객을 찾아가 손을 잡고 있다. 이를 놓고 보면 리더가 누구와 손을 잡는지에 따라 해당 기업이 놓인 상황이 어떤지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현재까지 손을 잡는 회장님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재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두산, 포스코 등은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이미지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리더를 넘어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손을 잡는 차원을 넘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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