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엄마가 다 친척동생 갖다 줬다. 한 번만 더 사 모으면 불태워버린대"기자가 만화 관련 연재물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친구의 신세한탄이다. 기자만큼이나 만화와 만화책을 좋아했고, 또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친구다. 만화영화나 만화책은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한다. 만화책을 사거나 읽는 사람들은 "애도 아니고 그런 걸 왜보냐"는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한심해'라는 눈빛은 덤이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절판된 만화책이 눈앞에서 태형이나 화형에 처해지는 처참한 광경을 봐야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얘기다. 엽기만화로 알려진 '이나중 탁구부'를 마을버스 뒷좌석에 앉아 읽고 있었다. 인근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타자 나는 만화책을 가방에 황망히 집어넣었다. 평소 만화책은 인류가 만들어낸 지상최고의 문명이라 외치던 기자였지만, 당시에는 내가 이 만화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뿐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나중 탁구부가 '엽기변태만화'로 알려진 까닭이었고, 또 하나는 그 만화책이 19세 이하는 읽을 수 없는 도서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만화, 19세 이상 관람가로 분류될 만큼 야하지 않다. 다만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주인공들의 상식 이하의 행동 들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했다는 정도로 변명하려한다. 흠흠.)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붉은색 스티커가 붙은 음란 만화책을 보고 있다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화책을 감추는 이유도 거기서 거기다. 만화책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당당하지 못해서다. 기자도 그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사실 만화에 대한 저평가는 우리나라에서 유난하다. '만화왕국'인 일본 지하철에서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애 티를 못 벗은 어른' '유치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대부분은 집에서, 그것도 자기 방에서만 만화책을 읽는다. 과거 만화방이 청소년들의 '탈선현장'이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현장이라기보다 할일 없는 백수들이 모여서 담배나 피우고 라면이나 끓여먹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서울 상도동의 만화서점 코믹커즐.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 곳이 바로 서울 상도동의 만화 전문 서점 '코믹커즐'이다. 만화 대여점이나 만화방과는 다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이 기형적인 유통구조가 만화가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자취를 감춘데 반해 '코믹커즐'은 만화책에 대한 관심과 소비를 명석하게 이끌어낸다. 1층은 카페, 2층은 만화서점으로 꾸려져 있다. 캐릭터 피규어로 장식한 1층에서는 커피 등 음료를 즐길 수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이곳에서 국내외 만화책의 '1권'만을 따로 모아 두었다는 것. 한마디로 마트의 '맛보기'인 셈이다. 1층에서 보고 재미있다 싶으면 2층으로 바로 올라가 구매할 수 있게 해 두었다. 2층 역시 만화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느껴진다. 일반 서적과 달리 만화책의 표지가 보일 수 있도록 진열됐다. 효율성으로 따진다면 0점 진열인 셈이다. "만화책 좀 눈치 안 보고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뭐 죄짓는 것도 아니고 방에 꼭꼭 숨어서 봐야 된다니까"아까 그 친구다. 조만간 손 붙잡고 상도동으로 가려고 한다. 거기에 가면 '금지된 만화책'을 소망하는 사람들과 나눌 얘기도 많을 듯싶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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