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인문학적 소양 부족한 학생 늘어나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K대에 재학중인 김모씨(25)는 대학생 과외 요청을 받고 무척 당황했다. 중고등학생의 입시 준비를 지도한 적은 있었지만 대학생 과외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과외를 부탁한 모 여대 신입생은 해외거주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학생이 겪고 있는 문제는 김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리포트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검색해야 하는지도 모르더라." 결국 김씨는 한 학기 내내 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빌려다 주며 글 쓰는 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했다. “아무리 해외거주자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하지만 기초적인 소양이 너무 없었다. 주변에 자기 말고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 #Y대 강사 이철원(가명, 38)씨는 지난 학기 교양 수업을 시작하며 한 학생에게 지니계수, 앵겔지수 등 사회학 용어를 물어 보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학생이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공대를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사회탐구 과목을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씨는 탐구 과목이 분리된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교과 수업을 떠나 상식에 속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잘 모른다면 교양을 쌓지 못하는 공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씨는 이러한 현상을 폭넓게 찾아볼 수 있다며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는 우리의 공교육 과정에 결점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강의를 따라가지 못해 고전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 입시만을 중요시하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대학 강의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기회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독해력과 글쓰기 능력 부족은 많은 대학생들의 공통적 문제다. ◇영수 성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 지난해 4월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입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실력이 비교적 상승했다고 밝혔다. 입학생 전체의 24.2%(822명)가 801점 이상을 받아 ‘고급영어’ 수강 자격을 얻었으며 텝스 점수가 550점 이하로 ‘기초 영어’를 수강해야 하는 학생은 지난해 26.5%(903명)에서 올해 22.9%(779명)로 3.6%포인트 줄어든 것. 기초 학력이 떨어지는 ‘기초수학 수강 대상 학생 역시 289명(16.6%)으로 전년도 354명(39%)보다 줄었다. 그러나 영어와 수학 점수가 오른 것만으로 기초학력이 상승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서울의 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는 최모씨(42)는 2006년 당시 촉발된 기초학력 부족에 대한 논란 자체가 지나치게 편향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대생의 수학 실력 부족 등 점수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만 문제시됐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계량화하기 어려운 글쓰기, 인문학적 소양 등은 간과됐다는 얘기다. “대학생들의 독서량도 매우 적다”고 최씨는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국대학신문과 인터넷포털 캠퍼스라이프가 200여개 4년제 대학 재학생 17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 한 달 독서량은 2.7권에 불과했으며 응답자 10명 중 1명은 한달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전공 불문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 소양 = 서울대 글쓰기교실의 모 연구원은 인문계열 뿐만이 아니라 이공대 학생들도 이와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고 말했다.그는 “이공계 학생들도 교양을 비롯해 기초 글쓰기 교과목을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한다”며 “그러나 독서나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공교육을 더욱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서울대 글쓰기교실은 리포트 작성 상담과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1년에 1500건 정도의 상담이 이뤄진다. 그는 이어 “이러한 교육으로 성취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는 전공을 떠나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글쓰기나 독서가 되지 않으면 추론과 문제제기, 비판적 사고 등 학문의 기본을 쌓을 수 없다는 것. 그는 “인문학과 글쓰기는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며 “대학 일선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진 기자 sjkim@asiae.com김수진 기자 sj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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