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정몽구 고로 사랑 32년](3) 정부 불허에 여론운동으로 맞불

정부, 하동 제철소 사업 불허범경남도민 운동 벌여 추진 강행[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현대그룹이 일관제철소 부지로 하동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동을 중심으로 한 진주 등 경남지역 주민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재정자립도에서 낙후된 서부경남지역에 포항제철소나 광양제철소에 버금가는 대형 제철소를 유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순식간에 경남 전역으로 확산돼갔다. 일각에서는 “‘현대특별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이런 지역 주민들의 환호에 부응이라도 하듯 1996년 10월 10일 정몽구 회장은 헬기를 타고 하동으로 날아간다. 김혁규 지사의 초청으로 이뤄진 전격 방문이었다. 이에 앞서 두 사람은 이 전무의 알선으로 만난 적이 있다. 정몽구 회장은 섬진강 하구변의 한 식당에서 제첩국과 재첩회로 점심을 한 후 김 지사의 안내를 받으며 갈사 간척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 하동군수의 브리핑을 받은 정몽 회장은 상기된 얼굴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몽구 회장은 그 때 이미 아버지가 꿈에 그리던 고로 제철소의 설계도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봄부터 특수팀의 이 전무가 공들인 끝에 그해 가을 김혁규 지사가 전국체전 참석차 경주에 들른 김 대통령과 현대제철건으로 면담하는 데 성공했다. 해군본부 내 별장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으면서 김 대통령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거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는 것 아니야”리고 말했다고 이 전무는 전했다. 미온적이었지만 부정적이지는 않은 반응이었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말처럼 되지는 않았다.같은 해 10월 24일 통상산업부 장관이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대그룹이 사업계획서를 내면 공업발전심의회(이하 공발심)에서 심의한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몽구 회장의 꿈이 깨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안된 11월 12일 현대의 제철소 설립을 불허할 수도 있다는 경제부총리와 재정경제원 차관의 입장이 나오면서 불길한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15일 현대의 제철소 사업계획서가 공식적으로 제출되지도 않았는데도 통상산업부가 공발심 심의를 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급기야 이틀후 심의가 열렸고 통상산업부는 “현대그룹의 제철소 건립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최종 발표했다. 역시 ‘공급과잉’이 주된 이유였다. 대를 이은 현대의 ‘철강의 꿈’이 주저앉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정몽구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몽구 회장에게는 정부의 방침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건 여론밖에 없었다. 실제로 공발심의 현대제철 불허 방침은 현대그룹뿐 아니라 경상남도에 적잖은 실망을 안겨줬다.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누구라도 불만 댕기면 여론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우선 하동군에서 청년회의소(JC)를 중심으로 군의회, 하동 정씨 종친회 등이 주축이 돼 ‘현대제철 하동 유치 범군민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추진위는 11월 하동군민 2만6645명의 서명을 받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하동 출신 현대차 영업사원인 강호상씨는 이 캠페인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이다. 하동뿐 아니라 진주 등 인근 지역에서도 유사한 민관 합동 추진위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더니 어느새 ‘현대제철 유치’는 범경상남도민 캠페인으로 확산됐다.경남지역에 거주하는 현대그룹 직원들과 경남지역을 연고로 한 직원들도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당시 서명에 참석한 현대차의 한 임원은 “1992년 대선 때보다도 더 활발한 캠페인이 벌어졌다”고 전했다.현대그룹과 경남지역 민관합동으로 이뤄진 가두서명은 1997년 가을 정점에 이른다. 당시까지 서명한 인원은 전국적으로 무려 280만명에 이르렀다. 당시 수거한 서명록 분량은 2.5t 트럭 3대에 싣고도 남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수거한 서명록이 너무 방대해 일부만을 복사해 11월 19일 청와대·국회·통상산업부·건설교통부·국무총리 앞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12월 9일 통산부로부터 ‘제철소 신규 건설 불가’라는 답변이 최종 회신됐다. 1년 가까이 경남도 전역에서 울려 퍼진 현대제철 설립 지지의 목소리는 허망한 메아리가 돼 돌아오고 말았다.가두 서명운동이 한창이던 1997년 가을 정몽구 회장은 경남도민들의 폭발적인 지지에 힘을 얻어 제철사업에 다시 불을 붙였다. 9월 10일 ‘코리아 서밋’ 주제 연설을 통해 제철업 추진 의지를 재천명하고 나섰다. 25일에는 독일 티센 제철소를 방문하고 합작투자 제의를 받아오기까지 했다. 10월 28일 마침내 경상남도와 고로 제철소 건설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조인식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경상남도 지역에는 산골짜기 곳곳까지 ‘현대제철 유치해 경상남도 살찌우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3000여명의 경남지역 유지들과 정 회장이 서울서 이끌고 간 계열사 사장들이 참석한 조인식은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탱크쇼’와 축포를 동반한 축제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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