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학력 진단을 위한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지 유출 사건은 교육당국의 시험지 관리 소홀과 교육업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빚은 결과로 나타났다. 연루된 유명 입시업체들은 공공연히 "해설 동영상 제작을 위한 문제지 사전 입수가 뭐가 문제가 되느냐"며 반발했고, 경찰 조사결과 입시업체 뿐 아니라 현직교사, 출판·인쇄업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상당수는 처벌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서울경찰청은 1일 학력평가 문제지를 입시학원에 넘긴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서울 모 사립고 교사 최모(4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EBS 방송국 외주 PD 윤모(42)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경찰은 또 문제지를 시험 전날이나 당일 오전에 입수해 문제풀이 동영상을 제작 배포한 혐의(공무상 비밀표시무효 등)로 K학원 원장 김모(3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등 대형 온라인 입시업체 관계자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그러나 입시업체에 10여 차례 문제지를 넘긴 경기지역 사립고 교사 4명과, 인쇄 용역을 받은 뒤 학원에 상습적으로 문제지를 유출한 입쇄업체들은 처벌 규정이 없어서 교육청 통보에 그쳤다. 대가성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봉인된 상자가 아닌 열린 상자에서 문제지를 꺼냈기 때문에 처벌 조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 결과에 놀란 것은 경찰 뿐이었다. 교육업체 실무진들은 관행처럼 문제지를 사전에 입수해 왔으며, 문제가 된 이후에도 교육업체들은 "대가성 없이 문제지를 받았으며, 무료로 해설 강의를 제작 해 배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사건 후 각성을 촉구하는 교육업계 일각에서는 "교육업계에 일하면서도 문제지 입수 과정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배제한 채 동영상 사전 제작이라는 목적에만 충실했다"며 "이번 사태로 교육업체들도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 단위 문제지가 이런 상태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교육과학기술부 등과 협의해 관련 법 조항을 개정토록 건의하겠다"고 말했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이번 사건에 대해 곤련자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평가영역인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이번 사건에 관련된 교원에 대해서는 교육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교단에서 영구히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건을 통해 전국 단위 시험지의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확인된 만큼 대형학원과 학교의 유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시험문제 유출 근절을 위한 정책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김보경 기자 bk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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