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박소연 기자]신라 신문왕이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대나무를 베어와 피리를 만들었다. 이 피리소리에 적들이 물러가고, 오랜 병을 앓던 환자가 씻은 듯 나으며, 가뭄과 장마도 물러가니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칭하고 국보로 삼았다.대금(大芩)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만파식적 설화다. 그 피리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이런 설화가 생겨났을까.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2·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의 연주를 듣노라면 적(敵)들이 살기(殺氣)를 버리고, 죽을병에 걸린 환자도 그 선율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고, 하늘마저도 감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금뿐 아니라 단소, 소금, 퉁소, 태평소, 쌍피리, 서양피리까지 못부는 피리가 없을 정도. 이생강 명인의 연주를 몇십년 들어 온 이들은 심지어 죽은 나무를 끊어다가 구멍만 뚫어주면 기막힌 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라고 귀띔한다.한성대 인근 직접 운영하는 대금교습소에서 만난 이생강 명인은 세상 어떤 악기도 대나무나는 소리는 능가할 수 없다며 '대나무예찬'을 시작했다."흙으로 빚은 소리, 바다 소라에서 나는 소리, 철로 만든 소리 이 모든 것을 다 합쳐도 대나무 소리보다는 못하지."그의 호(號)는 죽향(竹鄕)이다. 대나무가 제대로 있다는 뜻, 원래 있을 곳인 향(鄕)에 제대로 서 있어 본연의 소리를 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스승이자 대금명인 한주환 선생이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다.그가 대(竹)소리에 이렇게 심취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 명인은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적 소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고 말한다."내가 일본에서 태어났어. 나가있으니 고향이 얼마나 그립겠어. 아버지가 고향소리가 그립다며 나무를 끊어다가 직접 피리를 만드셨어. 그래서 어릴 때부터 피리를 불고 듣고 그랬지. 단소는 5살 대금은 8살 때부터 늘 입에 대고 다녔지."해방이 되자 9살 소년이었던 이 명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곧 6·25가 터졌고 전쟁중에 오히려 그의 예술세계의 기초가 다져진다. 전국 각지의 피리명인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자 이 명인은 스승들이 기거하고 있는 판자촌을 누비며 전국 팔도의 피리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잖아. 피리소리도 그래.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민속악은 대중들이 즐기는 그대로의 음악이거든. 서울 전라도 경상도 지역마다 소리가 조금씩 달라. 그런 음악들을 그 때 다 전수받을 수 있었지."이렇듯 팔도의 소리를 오롯이 살려낸 이 명인은 우리의 민속음악이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한탄했다."우리나라 음악을 다른나라 음악 대하듯 낯설어하잖아. 원래 우리곁에 있었던 음악인데. 일제강점기동안 우리음악을 없애려는 거기서부터 잘못된거지. 우리를 일본화하기 위해 일본이 연합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음악을 퍼뜨리고 우리 정체성을 무너뜨렸어."우리 음악이야말로 세계적인 음악, "국악이 최고"라고 이 명인은 말한다. 실제로 이 명인은 세계 각지에서 연주를 펼치며 현지인들의 갈채를 받고, 민속악을 세계에 알렸다. 1960년 5월 프랑스 국제민속예술제에서 그가 선보인 대금 독주에 대해 현지언론의 반응은 광(狂)적이었다. "그 때 나는 민속예술단원 33명 중 한 명으로 참가를 했지. 공연 도중에 갑자기 주인공 여배우 안나영씨가 맹장수술을 하게 된거야. 다른 대역을 찾기 위해 15분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그 때 내가 나갔지. 임기응변으로 13분동안 대금산조를 축약한 독주를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선을 보인 거였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휘몰아치는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본 외국인들이 많이 놀랬나봐."그때까지만 해도 '코리아'라는 나라는 일본강점에서 겨우 벗어나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만 있었다고 한다. 그런 뛰어난 음악, 훌륭한 문화가 이어져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충격과 감탄을 금치 못했던 외국 언론들은 "신의 소리, 영혼의 소리"라는 극찬을 내놨다."지금도 외국을 나가면 이 소리가 별천지 음악이라고 그래. 현 세대에서는 대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없어. 만 가지의 근심걱정을 없애주잖아."하지만 그는 꽉 막힌 전통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 명인은 섞음에 유연하다. 가수 바비킴 기타 연주자 김광석 신중현 클라리넷 연주자 길옥윤 등과의 작업을 통해 크로스오버를 꾀해왔다. "혼자만 연주하면 뭐해. 사람들이 많이 듣게 하고 감동을 느끼게 해야지. 음식과 똑같애. 서양음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요즘 비만때문에 웰빙 한국음식을 다시 찾잖아. 익숙한 것에 좋은 것을 섞어 먹여야지. 된장 간장 고추장처럼 구수하고 탁하면서 새콤한 맛이 우리 음악에는 다 들어있다고. 이제는 동서양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야. 예술은 원형을 아름다운 기술로 메이크업하는 분장술(扮裝術)이야"세월을 타고 흐르는 그의 피리연주는 무불통달(無不通達)의 경지에 올라 동서양을 아우르며 거침이 없다. 희노애락을 담은 그의 연주는 오는 9월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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