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들과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자구방안을 내놓은 대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주채권은행에 제시한 자구방안의 1순위는 '땅'이다. 복잡한 절차와 경영상 판단이 필요한 계열사 매각에 비해 손쉬운 대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과거 대우그룹처럼 되지 않으려면 핵심계열사를 팔라'는 압박하는데다, 부동산 경기침체 지속으로 매물 소화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아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15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호황기에 잇단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을 진행해 자금난을 겪으며 재무개선약정 체결 대상으로 분류된 A그룹은 당초 6월말까지 1조원 규모의 부동산 매각을 통해 자금난 해소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현재 우선 추진중인 금융사 매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어느정도 자금난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M&A를 통한 확장 후유증과 주력업종의 부진으로 약정 체결 대상에 오른 B그룹 역시 자구방안 우선순위로 제시하고 있다.
이 그룹은 올해 1200억원대의 계열사 지분 매각과 500억원대의 부동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데 이어 추가로 유휴부동산 매각에 나섰다.
그룹관계자는 "수도권 지역의 보유 부동산 중 매각 가능한 곳을 추가로 검토중"이라며 "연말까지 부채비율도 150%대로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C그룹도 채권단으로부터 자산매각을 요구받고 가능한 매물을 물색하고 있다.
건설·조선·해운 등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되거나 진행 예정인 업종의 기업들도 잇따라 부동산 매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최근 워크아웃 추진 기업이 구조조정 목적으로 매각하는 땅은 비사업용 토지에서 제외해 양도세를 대폭 경감해주기로 하면서 매각 작업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계열사 매각이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4일 한 포럼에서 "대우그룹이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그룹 해체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두 건지려고 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아까운 기업부터 먼저 팔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핵심계열사라도 필요하다면 팔아야한다는 주문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도 "일부 대기업들이 마취 주사는 맞았는데도 수술대까지는 안가도 되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은행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jmkim@asiae.co.kr
박수익 기자 sipark@asiae.co.kr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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