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공장과 협력업체가 몰려 있는 평택에 대량실업 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한 부품업체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재문 기자 moon@
"팔 데는 없지만 그래도 부품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공장은 꼭 다시 돌아갈테니까요"
14일 오후 방문한 경기 평택시 청북면 율북리 어연한산지방산업단지. 단지 한켠에 자리잡은 쌍용차 부품 협력업체 영창정공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은 재고가 넓은 공장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인적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런 기운만 가득했다.
공장 한 켠에서 두 직원과 함께 외로이 돌아가고 있는 프레스 기계를 살피던 이 회사 지홍근 상무는 "쌍용차 공장이 멈추면서 팔 데는 없지만 그래도 카이런용 부품을 좀 만들어보는 중"이라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예 공장이 죽어버린 것 같아 견딜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쌍용차 부품만 납품한지 35년. IMF의 위기를 넘기며 공장 직원들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 상무의 이번 겨울은 너무나 춥기만 하다. 쌍용차에서 1000대 만든다면 1000대 분량 부품을 만드는 식이어서 재고 적체 기간은 길어야 하루. 쌍용차가 공장을 세우면 부품 협력업체들은 따라서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초부터 현대기아차 물량도 조금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없었다면 진작에 공장 문을 닫았을 것"이라는 지 상무는 공장 벽에 높이 걸려있는 '최상의 쌍용차 무결함 부품공급!'이라는 플래카드를 올려다보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쌍용차의 공장 가동 중단에 따라 1차 협력업체 부품 공급도 중단되면서 2~3차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1차 부품 협력업체에 주문 자체가 끊기면서 아예 자금줄이 막혀버린 상황이다. 경기 인근은 물론 창원 엔진공장 인근 2~3차 부품업체들은 이미 폐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같은 공단 내 엔진부품 공급업체 서진캠은 쌍용차 부품 비중이 적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위기감만은 다를 바 없다. 이 회사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박원우 이사는 "쌍용차 사태가 다른 차 업체로 파급될까 두렵다"며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포승공단에 입주해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는 익명을 요구하며 "쌍용차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이 우리 부품 협력사들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는데 사실은 대형 전자회사나 타이어회사 등 돈 많은 기업들이 핵심 부품 공급을 중단하고 쌍용차의 숨통을 죄고 있기 때문"이라며 "돈만 받으면 된다는 저 이기적인 짓거리가 쌍용차만 죽이는게 아니라 부품업체들도 다 죽이고 있다"고 격분했다.
지역 상권도 이제 위기감을 넘어 고사 직전이다. 공장 직원들이 전원 출근해 생산라인을 지키다 퇴근하는 저녁 무렵. 쌍용차 평택공장 앞 중국음식점에는 손님이 북적일법 했지만 가족단위 손님만 보일 뿐 넓은 실내가 텅 비어있다. 이 식당 종업원 남 모씨는 "월급을 못받았다는 소릴 듣고 단골손님을 마주쳐도 식사하러 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쌍용차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평택이지만 쌍용차 직원들의 회생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퇴근길에 만난 쌍용차 생산직 근로자 전 모씨는 "언제라도 부품이 들어오면 공장을 다시 돌리기 위해 직원 전체가 출근해서 하루 종일 생산라인에서 대기하고 있다"며 "회사가 힘들어지기 전에는 우리만 먹고사는 일이고 우리 월급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을 이제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평택=우경희 기자 khw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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