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값이 ℓ당 2000원…사상 최고치 연일 경신
트럭·굴삭기·선박·소형 발전기 등 산업 쓰임새 커
고공행진 경유의 대체재 조차 사라진 현재 위기
전문가들 "석탄·가스는 안 비싼가…장기화 대비해야"
‘서민의 기름’으로 불리던 경유값이 ℓ당 2000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끝없는 상승세에 화물 트럭 운전기사, 경유 발전기를 쓰는 중소 사업체 사장, 물류비 부담이 큰 대기업 관계자들까지. 산업계 전반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부터 기업간거래(B2B) 전반에 경유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졌다.
27일 에너지·산업·경제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경유 가격 상승의 원인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급격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부른 ‘글로벌 오판’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의 에너지 위기라 하면 석유 가격이 오르면 천연가스나 석탄으로 이를 대체하는 식으로 가격 변동성을 낮추는 흐름이 전개됐다"며 "현재 경유의 높은 가격은 대체재인 천연가스·석탄 가격 또한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어 대체재 조차 찾지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경유는 휘발유보다 ℓ당 열량이 더 높다"며 "소상공 사업과 소비자 물가와 직결되다 보니 경유에는 보조금을 지원해 그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경유를 쓰던 트럭이 가격이 올랐다고 덜컥 수소를 연료로 쓸 수 있겠나"라며 "대체재 없는 수급이 문제"라고 말했다.
고공행진하고 있는 경유 가격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이다. 펜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위한 투자가 가속됐다. 그러나 에너지전환 이행과정에서 여전히 필요로 하는 화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줄었다. 탄소중립이 에너지정책의 지향점이 된 상황에서 향후 10~20년을 바라보는 화석 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띄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세계 화석 연료의 공급은 지속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놓여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향후 글로벌 경기변동이나 이상기후의 발생 등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에너지 가격은)매우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경유는 산업용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물류비 증가에 따른 제조업 원가 상승, 물가 수준 상승에 이어 소비 감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경유값 고공행진은 저성장·고물가 상태인 '스태그플레이션' 등 극단적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까지 만들고 있다. 실제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 사이트 페트로넷을 보면 지난달 국내 휘발유·경유 합계 소비량은 1735만5000배럴로 코로나19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4월 2124만7000배럴에 비해 18.3% 줄었다. 경유 소비 감소는 경기 둔화의 징조로 꼽힌다. 경유는 화물차 등 운송용뿐 아니라 굴삭기·레미콘·발전기 등 산업현장에서도 널리 쓰여 시멘트와 함께 경기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실물지표로 활용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 전망기관들은 잇달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지만 정부와 기업들이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석유제품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전방위적인 것"이라며 "어느 특정한 분야에만 영향 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밀착해 있는 물류, 교통 등 사회와 산업 분야 대부분에 치명적인 부담을 주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하지만 새 정부는 문 정부가 이미 유류세 탄력세율 인상을 지난해 12월과 올해 4월 활용하는 바람에 정책 수단을새 정부는 유가 급등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수단을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워진 상태"라며 "(문 정부가)소진시켜버렸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 역시 "현재로서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할 수 있을 만큼 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란 얘기"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 되면서 단기적으로라도 유가가 안정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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