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숙회를 좋아한다. 가끔 트레이더스에서 문어숙회를 사다 먹는다. 데친 문어 한 마리에 2만원~2만5000원 한다. 한번 젓가락을 대면 멈추기가 힘들다. 문어숙회는 소주 안주로 최고라지만 술을 못하는 나는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한 접시를 가볍게 비운다. 최근에 사온 데친 문어의 원산지 표시에 그만 눈길이 꽂혔다.
‘모리타니아’
그전까지 사 온 문어는 원산지 표시 ‘국내산’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순간,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모리타니아의 문어잡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Mauritania). 모로코와 세네갈 사이에 있는 나라. 1960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슬람 국가. 면적은 1백만 ㎢. 국토 면적만을 놓고 보면 세계 28위로 대국에 속하지만 인구는 4백2십만에 불과하다.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사하라 사막에 속한다. 일인당 국민소득 2300달러.
모리타니아는 자원과 수산물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지하자원은 철광석 38%, 구리 5% 순이고, 수산물은 냉동생선 15%, 연체동물 8.6% 순이다. 연체동물 수출이 바로 문어다. 모리타니아 어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통발을 걷어 올리면 문어들이 몇 마리씩 나온다. 문어를 끓는 물에 삶은 뒤 급속냉동해 수출선에 실린다. 모리타니아산 문어는 맛이 좋기로 소문 나 한국과 일본에 대부분이 수출된다.
모리타니아는 처음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다시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 사람들은 문어를 먹지만 모리타니아 사람들은 문어를 먹을 줄 몰랐다. 그러던 것이 문어잡이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 모리타니아 사람들도 조금씩 문어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문어숙회를 처음 먹어본 것은 1989~1990년이었으리라. 서울 광화문의 신문사에 입사하고나서였다. 충남의 내륙인 청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아무리 생각을 짜내도 문어숙회를 맛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문어숙회가 먹거리로 나의 전두엽에 각인된 것은 스물여덟 이후다. 회사 선배들에 이끌려 가끔씩 혜화동 칼국수집을 찾곤 했다. 혜화동에는 유명한 칼국수 맛집이 세 곳 있는 데 그중 한 곳에서 문어숙회를 술안주로 팔았다. 선배들은 인원수대로 칼국수를 시킨 후 꼭 문어숙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키곤 했다.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칼국수 한 그릇에 5000~6000원쯤 했고, 문어숙회 한 접시는 2만5000원을 넘었다. 4인이 가면 문어숙회가 평균 대여섯점씩 돌아갔다. 문어숙회는 초장과 참기름양념장과 함께 나왔다. 어떤 걸 선택해도 문어숙회는 맛이 훌륭했다.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자꾸만 손이 갔다. 유일한 흠은 비싸다는 것.
내가 삶은 문어 맛에 감동한 것은 제주도 추자도에서였다. 오래전 추자도에 근무하는 지인의 초대로 여름 휴가를 추자도에서 보낸 일이 있다. 목포까지 열차로 내려가 목포에서 추자도행 여객선을 탔다. 그때 지인은 우리를 아주 작은 해변으로 데려갔다. 심심풀이로 바위틈에 통발을 세 개를 놓는데, 가끔씩 문어가 잡힐 때도 있다고 했다. 세 개의 통발 중 하나에 제법 씨알이 굵은 돌문어가 들어있었다. 졸지에 포획된 채 육지로 올라온 문어는 8개의 다리로 발버둥을 쳤고, 나는 그런 문어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인은 능숙한 솜씨로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였고, 30여분 뒤에 캠핑용 식탁 위에 문어숙회 상이 차려졌다. 직경이 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문어다리가 뭉툭뭉툭하게 썰려 플라스틱 접시에 놓였다. 불과 30여분 전까지만 해도 추자도 앞바다 속에서 헤엄치던 문어가 아니었던가. 파도 소리와 그 파도에 자갈 구르는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문어를 한 점 씹었다. 문어살이 씹히면서 혓바닥에 닿았다. 그때 미뢰(味?)들이 기겁을 했다. 이렇게 부드럽고 쫄깃하고 맛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깨달았다. 혜화동 칼국수집에서 먹어본 문어숙회는 문어숙회가 아니었구나.
양식 코스로 식사를 할 때 보통 시푸드 전채(前菜)가 나온다. 최근 우연히 문어가 들어간 시푸드 애피타이저를 여러 번 맛볼 기회가 있었다. 보통 1~3cm 크기로 썰어져 다른 해산물과 함께 나온다. 소스를 끼얹고 나온 문어는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한번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초대받아 갔는데 초청자가 파스타를 먹기 전에 문어 애피타이저를 주문했다. 큼지막한 크기의 문어 7~8점이 접시에 나왔다. 그 문어를 접시에 옮겨 나이프로 썰어 음미했다. 애피타이저로 먹어본 문어 중 최고였다. 어떻게 문어를 삶았길래.
서양 문화권에서 문어에 대한 인식은 복합적이다. 식도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불길한 경계의 대상이다. 종종 영화나 소설에서 악(惡)의 기운이 서려 있는 바다생물로 그려진다.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난 것이 1989년 월트 디즈니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언더 더 씨(Under the Sea)’.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인어공주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게 ‘바다 마녀’ 우르슬라(Ursula)다. 이른바 메인 빌런(Villain)이다. 우르슬라는 은발, 짙은 화장, 뚱뚱한 체격에 피부색은 푸른 빛이 돈다. 이 우르슬라의 하반신이 문어다. 우르슬라는 바다의 지배자인 트라이튼을 증오하며 그를 몰락시키려 온갖 음모를 획책한다.
An imaginative drawing of an octopus attacking a ship by French malacologist Montfort in 1801. Photo by Wikipedia
문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크레타 문명에 등장한다. 토기 전체에 문어가 그려져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공포의 괴물 고르곤(Gorgon)이 문어다. 노르웨이 해안에 서식하며 어선을 공격했다고 전해지는 괴물 크라컨(Kraken)도 문어다.
프랑스 연체동물학자 피에르 몽포르(1766~1820)는 ‘거대 문어’ 그림으로 유명하다. 배를 공격하는 ‘거대 문어’ 그림은 유럽인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몽포르는 ‘거대 문어’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려 끝까지 추적한 탐험가로도 기억된다. 몽포르가 ‘거대 문어’ 확인에 인생을 걸게 된 계기는 1783년 향유고래 입에서 나왔다는 8m짜리 촉수 그림으로 인해서다.
빅토르 위고가 영국령 건지 섬에 망명중일 때 쓴 소설 ‘바다의 일꾼’. 이 소설에서 어부들이 문어와 싸우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렇듯 유럽세계는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신화와 전설이 뒤엉켜 문어를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로 여겨왔다. ‘언더 더 씨’의 우르슬라는 서구 문명의 오래된 서사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문어가 해양국가 일본에서는 에로티시즘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가 그 주인공. 호쿠사이는 1814년 우키요에 춘화에서 문어와 여인을 등장시킨다. 여인이 문어 두 마리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어부 아내의 꿈’.
문어는 바다생물 중 영물(靈物)로 취급받는다. 지능이 개와 고양이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문어 점쟁이가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에도 일본의 점쟁이 문어 ‘라비오’가 화제가 되었다. 일본이 16강에는 진출하지만 8강 진출에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어 ‘라비오’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당시 적중률 100%를 보이기도 했다. 점쟁이 문어 이야기는 CNN 톱기사로까지 다뤄지기도 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100% 적중률을 보여준 문어 ‘파울’도 있었다. 파울은 독일대표팀의 6경기 결과를 정확히 맞춰 도박사들은 물론 해양생물학자와 동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문어를 먹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이를 종교나 인종 문제로 구획하기는 힘들다. 바다에 면한 지역에서는 대체로 문어를 먹는다고 보면 된다.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이탈리아·그리스 식당에서는 문어가 고급요리로 대접받는다. 베를린 같은 독일의 내륙 도시에서도 문어요리가 있다. 다만 베를린에서는 숙회로 먹지 않고 주로 구어서 먹는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문어 요리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문어 사시미, 문어 숙회, 타코야끼가 대표적이다. 일본 대도시의 식품코너에 가면 포장된 문어 사시미가 수북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이 있다. 문어 이야기를 한번 써야겠다고 하던 참에 단숨에 본 영화다. 해양생물학자가 암컷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문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문어 숙회를 즐기는 사람은 보지 않는 게 좋겠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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