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고 건수 1년 만에 3배 증가
데이트폭력 처벌법 없어 별도 보호 조치 불가능
[아시아경제 김군찬 인턴기자]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 반면 경찰의 가해자 검거율은 하락하고 있다. 경찰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코드제로(CODE 0·위급사항 최고 단계)' 발령 기준을 낮추는 가운데 데이트폭력 처벌 관련법의 제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25일 세종시 한 원룸에서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있던 20대 여성이 경찰에 구조됐다. 피해자는 전화로 배달 주문을 하려는 것처럼 "수육국밥 주문하려고요"라고 말하며 남자친구를 속이고 몰래 112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피해자를 구조했다. 지난 7월에는 경기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있던 여성이 구조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살려 달라"는 짧은 신고 전화를 추적한 지 28분 만에 피해자를 구조했다.
데이트폭력 범죄 신고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26일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는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 2020년 1만8945건으로 대체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21년에는 5만7297건으로 급증하며 1년 만에 3배로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이미 4만339건이 신고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 급증에 대해 "이전에는 데이트폭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관련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신고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신고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의 데이트폭력 가해자 검거율은 하락하고 있다. 2017년 72.9%였던 검거율은 2018년 54.9%, 2019년 49.4%, 2020년 47.4%로 하향세다. 특히 2021년에는 18.4%로 급감하며 1년 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실제 지난해 11월 데이트폭력 구조요청을 받은 경찰이 엉뚱한 곳에 출동해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피해 여성이 신고하는 데 사용한 스마트워치의 기술적 결함 등의 문제로 피해자 위치를 잘못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신고 이후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검거율과 관련해 오인 신고나 중복 신고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실질적인 데이트폭력의 검거율을 계산하면 매년 100%일 것"이라며 "데이트폭력은 아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 신고가 들어와 추적했을 때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데이트폭력으로 형사입건된 피의자들의 구속률도 마찬가지다. 구속률은 2017년 4.0%, 2018년 3.8%, 2019년 5.1%, 2020년 2.7%, 2021년 2.2%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올해 7월까지의 구속률은 1.8%에 불과하다.
오윤성 교수는 한 자릿수 구속률에 대해 "경찰이 영장을 신청해도 그걸 기각을 하는 것은 중간 단계인 검찰이나 그다음 단계인 법원"이라며 "(신당역 피살사건) 이번에도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사례였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코드제로(위급사항 최고 단계)' 발령 기준을 낮춰 강력범죄 대응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지난 22일 전국 경찰서 112상황실 관계자와 화상회의를 열고 "특히 여성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건에 코드제로 발령을 적극 고려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의 긴급성과 중대성에 따라 5단계로 구분해 대응체계를 발령하는데, 코드제로는 112신고 대응 매뉴얼 중 가장 위급할 시 발동하는 단계다. 신속한 출동이 필요한 강력범죄 사건에 한해 발령된다. 통상 스토킹,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은 코드1이 발령되는데, 대응코드를 한 단계 높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오 교수는 경찰의 코드제로 발령 기준 완화 방침에 대해 "법을 개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찰이 더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스토킹 처벌법과 달리 현재 데이트폭력 처벌 관련법은 제정되지 않아 데이트폭력 발생 시 긴급응급 조치 등 별도 보호 조치는 불가능하다.
김군찬 인턴기자 kgc60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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