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의 귀환…교외선 부활 시간여행 시작
느림의 미학… 낭만의 ‘교외선’
시간이 멈춘 간이역… ‘일영역’
마지막 벚꽃 즐길 ‘매내미 벚꽃길’
예술·계절·건축이 빚어낸 공간의 시 ‘장흥 아트투어’
기타 둘러메고 송추계곡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청춘을 노래하던 그 시절 그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 2025년 '교외선'이 21년 만에 운행을 재개하며 단순한 철도의 복원이 아닌, 시간의 복원을 이뤄내고 있다.
16일 양주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장흥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다시 한번 이 지역을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되살릴 준비를 마쳤다.
고양 대곡역에서 의정부까지, 한적한 시골 간이역을 지나며 하루 왕복 20회 운행하는 이 느린 열차는 잊고 지낸 감성을 다시 불러낸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 그리고 계절의 색이 여백처럼 마음을 채우는 여정은 바쁜 도시인에게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그 중심에는 경기 양주시 장흥이 있다. 스쳐 지나던 이름에서, 이제는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감성 관광지로 재조명되고 있다.
'조금 느린 속도'가 가장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교외선'이 그 증거다.
2004년 운행 중단 이후 21년 만에 되살아난 이 노선은 고양 대곡에서 시작해 일영, 장흥, 송추지역을 지나 의정부까지 이어진다. 단선 비전철 열차는 바쁜 도시의 리듬을 내려놓고 싶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동 수단이 된다. 짧지만 진한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추억의 복원'이자 '마음의 환기'다.
중간 정차역인 장흥역과 송추역은 과거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였고, 이제는 예술과 전통,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고요한 산자락 아래, 햇살을 머금은 듯 조용한 간이역 '일영(日迎)'.
과거 MT 명소였던 이곳은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감성과 포토 스팟으로 떠오르고 있다.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이 탄생한 배경지이기도 한 일영역은 추억의 무대이자 현재의 풍경으로, 여전히 조용히 방문객을 맞는다.
봄이 떠난 자리에 남은 마지막 벚꽃. 일영역 인근의 매내미 벚꽃길은 개화 시기가 늦어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이 벚꽃을 보낸 후에도 환한 꽃 터널을 이룬다. 양쪽으로 벚꽃 나무가 길게 늘어선 이 길은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리는 '꽃비의 길'이 된다.
이 길의 이름 '매내미'는 춘향전에서 유래한 설화도 간직하고 있다. 전설과 함께 걷는 이 길은 단순한 꽃길이 아닌, 이야기와 시간이 머무는 길이다.
벚꽃길의 끝에는 남경수목원이 기다리고, 물길과 꽃길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봄 그림처럼 다가온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그 길을 걷다 보면 계절의 끝에서 계절의 시작을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쉬운 봄을 좀 더 붙잡고 싶은 이들 혹은 이미 진 벚꽃이 아쉽기만 한 이들이라면 지금이 바로 '매내미 벚꽃길'로 향할 시간이다.
장흥역에 내리면 본격적인 '예술 산책'이 시작된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네 곳의 예술 명소가 기다린다.
청암민속박물관은 1만2000여 점의 민속 유물이 전시된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이다. 2만여 평 부지에 1만2000여 점의 민속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단순한 전시가 아닌 살아 있는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청암민속박물관'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가나아트파크'가 기다린다. 1984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으로 시작된 이곳은 전시 공간은 물론 어린이체험관, 조각공원, 목마놀이터, 공연장, 레스토랑까지 갖춘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우치다 시게루, 반시게루,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건축미는 동양의 절제미와 서양의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국내 최초의 피카소 어린이 미술관은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장욱진미술관은 단순함 속 깊이를 담은 작가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철학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소재 속에 깊은 사유를 담은 그림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올해는 기획전 '상상정원'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길 건너엔 '사랑'을 주제로 한 조형 예술의 정수가 있는 공간인 민복진미술관이 자리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세계로 독보적 조형미를 보여준 작가 민복진의 조각들이 전시되며 현재는 해방 세대 조각가 4인의 인체 조각을 조망하는 특별전 '앉거나 서거나 누워있는'이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장흥자생수목원은 자연 그대로의 질서 속에서 붉은 철쭉과 잣나무 숲이 어우러져 힐링의 정점을 찍는다.
감성이 차오른 여행의 마지막은 자연이 장식한다.
송추역에서 도보 15분, 북한산국립공원의 송추계곡이 시작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봉우리와 계곡 물소리 사이로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호흡이 다시 살아난다. 그곳엔 주말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산 코스가 펼쳐지고 그 중심에는 웅장한 자태의 오봉이 우뚝 서 있다. 다섯 개의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한 이 풍경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계곡 물에 발 담그며 쉬고 나면, '맛의 거리'라 불리는 송추역 인근 로컬 맛집에서 따뜻한 시골 밥상 한 끼가 기다린다.
특히, 오랜 단골을 보유한 음식점들은 관광지 특유의 분주함 대신 정겨운 시골 밥상처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송추계곡과 북한산은 장흥 예술 기행을 자연의 여운으로 잇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 코스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교외선은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있다.
양주시 관계자는 "올해 '장흥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하며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며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교외선의 느림의 미학을 만깍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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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자연, 역사, 낭만이 어우러진 이 도시의 이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금, 잠시 멈춰 서서 진짜 '쉼'을 찾고 싶다면 교외선을 타고 양주로 향하자. 지금은, 당신의 시간이다.
양주=이종구 기자 9155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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