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관련 기사 매일 쏟아져
전기차 판매 둔화 충격 강해
외부 시장 변화 예측 못한 탓
![한국에서만 쓰는 말 '캐즘'[에너지토피아]](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092008002632948_1726786826.jpg)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성장 정체)이란 말은 한국에서만 쓰입니다."
최근 한 중소 이차전지 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이 말을 듣고 구글에서 영문으로 전기차 캐즘을 검색해봤다. 실제로 최근 1년간 전기차 캐즘과 관련한 기사 출처는 대부분 한국 매체였다.
해외 언론에서 전기차 캐즘이 등장한 최근 사례는 지난해 5월 테슬라의 판매 감소를 분석한 기사였다. 2023년에는 중국 전기차 판매가 둔화하자 이를 두고 캐즘이란 얘기가 나왔다. 근래 들어 해외에선 캐즘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매일 전기차 캐즘과 관련한 기사가 쏟아진다.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도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캐즘이었다. 그렇다면 전기차 캐즘은 실체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해외에서는 캐즘이란 말보다는 ‘둔화(slow down)’라는 말을 쓸 뿐이다.
한국에서 유독 캐즘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전기차 판매 둔화의 충격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23년 하반기 각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면서부터였다. 미국은 보조금을 축소하지 않았으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보조금 대상이 되는 차종이 감소했다. 전기차 가격이 오르자 일반 대중이 굳이 전기차를 살 이유가 사라졌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선택한 해결법은 단순했다. 보조금 대신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찾은 게 가격이 저렴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였다. 테슬라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제조사들이 잇달아 LFP 배터리를 탑재한 차종을 늘렸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이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LFP 배터리 제품군이 없던 한국은 내세울 게 없었다.
지난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모두 저조한 경영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을 ‘전기차 캐즘’에서 찾았다. 그런데 중국 CATL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67억달러(약 9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캐즘이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CATL은 자국 내 탄탄한 공급망과 규모의 경제 덕에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모든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이차전지 기업들이 난립하자 과잉 공급으로 저가 경쟁이 벌어졌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은 재고로 쌓인 배터리를 글로벌 시장에 밀어내기 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 최대 피해자는 역시 한국 배터리 기업이다.
한국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둔화의 충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외부의 시장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LFP의 경쟁력을 과소 평가하며 삼원계 배터리에 올인했던 것은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서는 서둘러 LFP 배터리를 상용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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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올해 인터배터리 2025에서 다양한 제품군을 전시했다. 예전에는 ‘차별화’에 방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구색을 모두 갖췄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것일까? 한 배터리 기업 임원은 "어떤 파도가 와도 넘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즘을 지나 다가올 제2의 성장기에는 한국 배터리 기업이 다시 도약하길 기대해본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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