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직은 지켜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다. 취임 40여일 만에 총리로 다시 선출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이야기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힘 빠진 식물총리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당장 내년도 예산안 통과, 정치개혁, 국회 운용까지 가시밭길이 깔려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12일 이시바 총리가 전날 총리지명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며 2차 내각을 발족했으나 정권 운영에 3개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먼저 야당의 협조가 절실해진 2025년 예산안이다. 지난달 조기총선에서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국민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끌어들이지 못할 경우 예산안 통과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에 앞서 추진될 2024년도 보정예산안의 경우 노토반도 지진, 호우재해 복구 관련 내용이 포함돼있어 야당이 쉽게 반대하기 어렵지만, 2025년 예산안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고 닛케이는 진단했다.
정치권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라디오 닛케이에 출연해 이른바 '연수입 103만엔의 벽' 해소 공약과 관련해 "답변이 없다면 2025년 예산안에 찬성하는 게 좀처럼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는 국민민주당이 총선에서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것으로 소득세 부과기준을 기존 103만엔으로 178만엔으로 상향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이 경우 세수 감소가 불가피해 재무성을 중심으로 신중론이 잇따른다.
두 번째 관문은 정치개혁이다. 이시바 총리는 전날 밤 '103대 총리'로 재선출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자민당은 이번에야말로 거듭나야 한다"며 정치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같은 날 특별국회 개회에 앞서 제1야당인 입헌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 제2야당 일본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대표와도 면담해 이러한 정치 개혁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는 의원에 지급하는 정책활동비를 폐지하는 등 정치자금규정법을 조기에 재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민당 선거 참패의 계기가 된 비자금 스캔들에서 벗어나, 반전 기회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러한 정치개혁이 이시바 총리의 구상대로 쉽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노다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는 주요 정치공세 카드로 이러한 비자금 스캔들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추진 과정에서도 이시바 정권과 자민당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지막 관문은 '여소 야대' 국회 운영이다. 지난달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같은 달 9일 중의원을 조기 해산하고 내각 발족 한 달 만에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이 확보한 의석은 215석으로 의회 과반은커녕, 기존 의석수보다도 64석이나 줄었다. 국회 주도권을 잃은 것이다. 이에 따라 17개 중의원 상임위원장직 역시 자민·공명당 등 연립 여당 10명, 입헌민주당 등 야당 7명으로 나누게 됐다.
특히 30년간 여당이 맡아온 예산위원장을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맡게 된 것은 이시바 총리와 자민당으로선 뼈아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예산위원회는 정부 예산안 심의를 맡는 핵심 상임위로 위원장은 위원회 개최나 표결 결정 등을 통해 내각을 압박할 수 있다. 개헌안 심사를 총괄하는 헌법심사회 회장 역시 입헌민주당에 넘어갔다. 자민당 숙원 사업인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안이 가로막히고, 대신 선택적 부부 별성 도입 등이 적극 논의될 공산이 커졌다. 닛케이는 "야당측이 위원장이 되면 정부, 여당이 상정하는 일정에서 심의나 채택이 어려워진다"며 "주도권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닛케이는 또 다른 기사에서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출범한 내각은 정권 기반이 약한 만큼 단명의 예가 많다고 짚었다. 1994년 하네다 쓰토무 내각이 대표적이다. 당시 하네다 내각은 64일 만에 퇴진했다. 이 매체는 "여당만으론 법안, 예산안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야당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정권 운영이 불안정해지기 쉽다. 야당이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찬성이 다수가 될 가능성이 높고, 가결 시 정권은 사직, 중의원 해산, 조기총선 등을 강요당하게 된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은 2025년 여름 참의원 선거도 앞두고 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전날 밤 기자회견에서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외교 행보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는 오는 15∼16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18∼19일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한미일은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3개국 정상회의 개최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윤석열 한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과 만나 국제정세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논의할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2기 내각의 우선 과제로는 안보 강화, 치안·방재 대응, 활력 회복 등을 제시하면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 10조엔(약 90조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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