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위 등 여론조작 방지 대책 마련 나서
이내영 여심위 위원장 "법·제도로 손봐야"
정치권서도 명태균 방지법 등 입법 나서
명태균씨의 여론조작 정황이 알려짐에 따라 신뢰성에 의문이 커진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공표 여론조사 등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 보완과 함께 정당과 언론의 쇄신 역시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내영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여론조사 조작 개선방안과 관련해 "기존의 사전 신고 제외 대상을 줄이고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조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도화하려고 한다"면서도 "제일 큰 문제는 기존의 규정이나 법을 바꾸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객관성ㆍ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심위는 일련의 여론조사 조작 논란 대책과 관련해 개선책을 마련해왔다. 여심위는 여론조사 왜곡을 막기 위해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공표용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가중값 등에 대한 규제를 동일하게 받도록 하는 방안과 조사 실시 신고 면제 대상을 축소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 108조에 의해 사전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던 인터넷 언론 등의 경우도 신고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언론사의 이름을 걸고 실시된 여론조사의 경우 관리가 안 돼 신고 면제를 줄이려는 방침을 밝히자 언론사들의 반발이 많다"며 "(그동안) 언론사와 정치권, 조사업체가 유착해 선거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명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미공표용 여론조사의 경우에는 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이 미공표용 여론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언론이나 국민도 규제를 안 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후보나 정당 등이 하는 여론조사도 미공표용인데 이를 규제한다고 하면 반발이 클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공표용 여론조사를 여심위 모니터링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정치권조차도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일이 터지면 선관위나 여심위에 말을 하지만, 정작 제도 개선 단계가 되면 언론에서는 왜 언론을 심의등록 대상에 넣으려고 하냐며 반발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여심위 조직의 한계도 언급했다. 그는 "여심위는 결국 한 달에 한 번 회의하는 위원회 조직인데다 직원도 20명 남짓"이라며 "반면 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너무 많이 이뤄진다"고 꼬집었다. 일련의 해법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이번에 공론화가 되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생겨나 방안들을 만들고, 국회에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명태균 방지법 등장
정치권에서도 별도의 대책이 나오고 있다. 명씨 관련 여론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여론조사를 활용한 정치 브로커 근절 대책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명태균 방지법'으로 명명된 관련법의 핵심 골자는 2017년 도입된 선거 관련 여론조사기관 등록취소 제도의 기능 강화이다. 박 의원의 안은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여론조사기관·단체의 재등록을 허용하지 않아 업계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벌금형을 없애는 등 처벌 규정도 강화하고, 안심번호 도입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도 "결국 처벌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한번 걸리면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응답률을 15%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응답률 15% 미만 여론조사의 공표 금지를 여러 차례 주장해왔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에도 "응답률 2~3%가 마치 국민 전체 여론인 양 행세하는 잘못된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며 "극단적인 찬성·반대파만 응답하는 ARS 여론조사는 폐지돼야 하고 응답률 15% 미만은 공표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응답률은 제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훈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아무리 1000명, 1만명 여론조사를 했다고 해도 응답률이 낮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연구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여론조사의 경우 모집단에서 패널을 어떻게 뽑았는지에 대해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개혁 의지와 별개로 미공표 여론조사의 경우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공표 조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설문조사하겠다는 것, 이런 것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냐"고 말했다. 정치관련 여론조사라고 해서 규제의 영역에 둘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더욱이 그동안 여론조사 등에서 규제 예외를 적용받던 정당 등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제도 개선과 별개로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종훈 평론가는 "여론조사업체만의 문제라고 봐야겠냐"며 "결국 정치인의 수요가 있으니 여론조사업체가 난립하게 된 것이다. 정치인 쪽에서 이런(조작된) 여론조사를 요구하니 받아서 자가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 교수도 "(정치권의) 수요가 있느니 그러는 것 아니냐"며 "답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는 데이터를 찾으니까 문제"라고 말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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