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4m 길이 패각 성토층 확인
가야 왕성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 될 전망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대규모 공사 흔적이 발견됐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봉황대 구릉 동쪽 경사면과 평지를 조사하다가 약 1600년 전 대규모 토목 공사가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패각(貝殼) 성토층을 확인했다고 22일 전했다. 패각 성토층은 다량의 조개껍데기를 섞어 흙을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서 쌓은 층이다.
발견된 성토층은 길이가 최대 4m다. 봉황대 구릉 북동쪽의 저지대를 매립해 조성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5세기에 이 일대에서 대지를 넓히기 위한 공사가 있었을 것”이라며 “인근 봉황 토성의 성벽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길이가 100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사진 땅 주변으로 흙을 켜켜이 다져 쌓아 올리는 방법은 넓은 땅을 조성할 때 주로 사용된다. 경주 황룡사 터, 부여 금강사 터 등 삼국시대 절터 등이 대표적 예다. 봉황동 유적은 이들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 조개껍데기를 섞어 쓴 점에서 차이도 있다.
이번 조사 성과는 향후 가야 왕성(王城·왕궁이 있는 도시)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금관가야의 전성기는 4세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규모의 공사가 5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은 당시 지배층의 권력이 공고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공사에는 그만한 노동력과 재화가 필수”라며 “이 일대가 과거 금관가야 왕성의 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봉황동 유적에선 그간 발굴 조사를 통해 배가 드나드는 접안시설, 철을 생산하고 벼리는 작업을 하던 야철(冶鐵)터, 토성 등 청동기 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흔적이 확인됐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1∼4세기경 생활 모습을 가리키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학계는 금관가야의 왕궁 또는 왕성이 있었던 터로도 보고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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