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작년 직매입 비중 '절반' 돌파
상장 위해 성장 택했지만…적자 누적
새 주인 찾기 고군분투…올해 수익성 개선
'한국의 아마존'을 꿈꾼 1세대 e커머스 플랫폼 11번가는 새 주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해 기업공개(IPO) 실패 이후 강제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큐텐 계열 티몬·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로 인해 e커머스 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커지면서다.
11번가는 최근 수년간 직매입을 확대하면서 몸집을 키웠는데, 이로 인해 영업적자가 커졌고 누적 손실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자산이 대폭 줄어 부채비율이 치솟았다. 11번가는 올해 인력 구조조정 등 적자 탈출을 위해 비용 절감에 나서며 수익선 개선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듀 오픈마켓'…덩치 키운 11번가, 작년 직매입 비중 50% 돌파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1번가는 지난해 제조사로부터 직접 물건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직매입 매출이 4357억원으로, 오픈마켓 중개수수료 매출(4297억원)을 넘어섰다.
1세대 e커머스 플랫폼인 11번가는 입점 판매사가 올린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하면 판매대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챙겨 매출을 발생시키는 오픈마켓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 3.9% 2021년 4.6% 수준이던 직매입 비중이 2022년 38%까지 확대됐고, 지난해에는 절반 이상의 매출 비중을 차지했다.
오픈마켓 중개수수료는 통상 판매대금의 10% 안팎이다. 1만원 짜리 상품을 팔면 1000원이 매출로 잡힌다는 이야기다. 반면 직매입은 판매대금 1만원 전액이 매출로 처리되면서 기업의 볼륨을 키울 수 있다. 쿠팡과 컬리가 성장한 사업모델이다.
실제 11번가는 2022년 슈팅배송을 론칭하고 직매입 상품을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뒤 매출이 급성장했다. 2021년까지 5000억원대 머물던 매출이 2022년 7890억원으로 껑충 뛴 데 이어 지난해 8655억원으로, 올해 1조 매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만 이 기간 상품 매입 비용이 급증하면서 영업적자폭이 대폭 커졌다. 기업의 볼륨은 키웠지만, 수익성은 악화된 것이다.
'상장 위한 성장' 선택…양날의 검
오픈마켓이 근간인 11번가가 직매입 비중을 확대한 것은 기업공개(IPO)를 염두한 행보였다. 11번가는 2018년 H&Q파트너스와 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5년내 기업공개(IPO)를 약속했다. 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금 5000억원에 연 8% 이자를 붙여 돌려주기로 했다.
당시 계약에는 2023년 9월30일까지 상장을 완료하지 못할 경우 재무적 투자자(FI)가 SK의 지분까지 끌어다 강제 매각(드래그얼롱·Drag along)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전에 SK가 지분을 다시 되살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였다.
하지만 지난해 상장은 불발됐고, 11번가의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면서 FI가 강제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큐텐을 비롯해 알리익스프레스, 오아시스마켓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실제 매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연초부터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직접구매(직구) 플랫폼이 '초저가'를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하면서 국내 e커머스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고, 티메프 사태를 거치면서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이 부각되면서다.
최근 수년간 11번가가 성장 동력을 삼은 직매입은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경우 재고부담을 플랫폼이 떠안는 구조다. 실제 11번가는 2021년 69억원이던 재고자산이 이듬해 719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800억원(797억원)에 육박했다. 반면, 상품을 판매한 뒤 받은 판매대금을 입점 셀러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보관하는 예수금은 2021년 4010억원, 2022년 3545억원에서 지난해 2955억원으로 갈수록 줄고있다. 오픈마켓 거래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다.
예수금이 급감하고, 거래처에 지급해야할 외상값인 미지급금 등이 줄면서 지난해 부채규모가 4889억원으로 전년보다 835억원 감소했다. 하지만 돌려받지 못한 신용카드 채권을 캐피탈 등에 넘기면서 미수금이 2022년 4009억원에서 지난해 1625억원으로 급감하는 등 자산이 줄면서 이 기간 부채비율은 220%에서 400%로 뛰었다.
올해 수익성 개선 집중…오픈마켓 셀러 달래기
11번가는 티메프 사태 이후 오픈마켓 셀러들을 붙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심정산 서비스를 추가로 실시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나선 것이다. 안심정산 서비스는 상품 배송이 완료된 다음 날 정산 금액의 70%를 먼저 주고 나머지 30%는 고객이 구매를 확정한 다음 날 지급하는 방식이다. 최대 열흘가량 소요되는 일반 정산보다 7일 정도 빨리 3분의 2 이상의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다.
지난달에는 모회사 지원 의지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안정은 대표가 직접 입점 판매자들에게 CEO레터를 보내 "SK스퀘어와 최근 e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비롯해 다양한 현황에 대해 지속 논의하고 있으며, SK스퀘어 경영진 또한 11번가가 고객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편리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판매자와도 동반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11번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오픈마켓 부문에서 올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1∼9월) 오픈마켓 부문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0억원 이상 늘었고 리테일(직매입) 사업을 포함한 11번가 전사 기준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300억원 이상 증가했다.
11번가는 올해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자구 노력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연말까지는 '클럽형 멤버십', '패밀리결제' 등 고객 혜택과 편의성을 높이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는 오픈마켓 사업의 영업손익을 흑자로 전환하고 내년에는 전체 사업에서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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