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美 대선]③
美 제조업 부활에 한목소리
트럼프는 '관세 폭탄' 예고
백악관 주인 누가 되든 중국 견제 지속
해리스는 다자주의, 트럼프는 고립주의
다음 달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새 행정부의 산업·통상 정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세금, 낙태, 기후 정책 등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당한 이견을 보이지만 산업·통상 정책과 대(對)중국 정책에 있어선 공통분모가 많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견제'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백악관에 입성하든 제조업 복원과 보호무역을 골자로 한, 한층 독해질 미국 우선주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도 해리스도 美 제조업 복원 한목소리…트럼프는 '관세 폭탄' 예고
해리스 부통령 집권 시 미국의 산업 정책은 제조업 부활로 요약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지원법(CSA)을 통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280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나아가 해리스 부통령은 반도체 외에 다른 첨단기술 산업으로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5일 펜실베이니아에서 경제 정책 공약집인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전진의 길'을 발표하고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 규모의 세액공제를 통한 제조업 복원 전략을 소개했다. 지원 대상 산업에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블록체인, 청정에너지, 생명공학, 반도체 등이 포함됐다. 전통 제조업인 철강, 자동차 산업에도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제조업 상징인 US스틸의 일본제철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처럼 동맹국인 일본 기업에까지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제조업 복원에 대한 미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다는 평가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제조업 부흥을 내걸고 있다. 바이든·해리스 정부가 보조금, 세액공제를 당근으로 제시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무기는 관세란 채찍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평균 3% 수준인 미국의 관세율을 전 세계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까지 인상하는 보편관세 도입을 예고했다. 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시장에 진입할 때 입장료를 내거나, 입장료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고 제품을 생산해 팔라는 뜻이다. 무너진 제조업을 복원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조지아주 유세에서 이 같은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재선 성공 시 제조업 대사를 임명해 "다른 나라의 일자리를 빼앗아 오겠다"며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독일에서 조지아로 제조업의 대규모 엑소더스(탈출)를 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세를 지렛대로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각국과 무역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아울러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15%로 낮추고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문가들은 백악관 주인이 누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닌 '뉴노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로펌 아널드앤드포터의 데이비드 박 파트너 변호사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제조업, 무역 부문에서 보호주의를 펴는 등 산업·통상 정책에서 공통점이 많았다"며 "11월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가 당선되든 관세를 비롯한 미국의 보호주의 조치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중 기조 유지…해리스는 다자주의, 트럼프는 고립주의
대중 강경 기조는 제조업 복원과 함께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관통하는 공통된 키워드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 상대로 보고, 미 하원에 중국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중국 견제에 있어선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미국의 대중 압박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60%의 초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1기 때인 2018년 중국산 제품에 25% 고율관세를 때리며 시작됐던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재임 시절인 2020년 체결한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이행을 중국에 요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중국은 미국산 제품·서비스를 추가 구매키로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미·중 갈등 악화를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초고율 관세 폭탄,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철폐를 앞세워 대중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 역시 중국과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전략을 추구해 온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갈 전망이다. 전임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중 정책에서 연속성을 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린 대중 관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지난 5월에는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상향했다. 이에 더해 반도체·AI 등 첨단기술에서 대중 수출통제에 나서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촘촘한 대중 포위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렌 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은 바이든의 (대중) 디리스킹 정책, (제조업) 리쇼어링, 공급망 보호에 비판적이지 않았다"며 누가 당선되든 대중 정책은 연속성을 가질 것이라고 봤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예상된다. 해리스는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다자주의 기조 아래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공급망 등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립주의에 기울어져 있는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과의 협력 관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역시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2기 출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연구원은 "해리스는 양자, 다자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환영할 것"이라며 "반면 트럼프는 여전히 한국을 무역 측면에선 적, 안보에선 무임승차자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한국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나서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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