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 반도체 업계에 가격 압박 우려"
중국이 올해 상반기 반도체 제조 장비에 미국, 한국, 대만, 일본 4개국 지출 비용을 더한 것보다 많은 비용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반도체 분야에서도 태양광, 전기차처럼 '과잉생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현지시간) CNBC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중국이 반도체 제조 장비 조달에 247억3000만달러(약 32조9824억원)를 썼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북미, 한국, 대만, 일본이 지출한 조달 비용은 236억8000만달러(약 31조5868억원)다. 북미 지출의 대다수는 미국에서 나왔다. 중국이 주요 반도체 제조국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을 장비 구매에 쓰는 것이다.
CNBC는 "중국이 이처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서방의 규제로 인해 반도체 핵심 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어서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클라크 쳉 SEMI 수석 이사는 반도체 제조 장비에 과도하게 투자하게 되면 장차 효율성과 활용도가 떨어지게 되며, 중국 외 반도체 업계에도 가격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태양광, 철강, 전기차 등 부문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붕괴로 중국 경기가 침체하자 중국 정부는 제조업 부문에 공격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며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은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데,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미국, 유럽, 캐나다 등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중국은 현재 가전제품, 자동차 등에 쓰이는 레거시(성숙 공정)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 수석 강사 겸 힌리히 재단 연구원인 알렉스 카프리는 "중국이 레거시 칩을 생산하는 길을 잘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작년 10월 28㎚(1㎚=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 비중이 2023년 29%에서 2027년 33%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카프리 연구원은 첨단 반도체 영역에서는 "중국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 접근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화웨이는 자체 개발하고 SMIC에서 생산한 7㎚ 칩을 탑재한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을 출시해 화제가 됐다. 한때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 1위에 오르기도 했던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 제재 리스트에 오르며 휘청였다. 첨단 반도체 접근이 불가능해 5G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하며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했지만 지난해 자체 기술로 반도체 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카프리 연구원은 "SMIC엔 획기적인 일이지만, EUV 장비 없이 7㎚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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