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량 제한 정책은 마치 '비행기를 100번 탈 때까지는 사고가 나지 않아, 하지만 101번쯤에는 사고 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난 2일 국회 '전기차 화재 예방' 토론회. 행사에 참석한 한세경 경북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서울시의 전기차 충전 제한 정책을 이런 비유로 문제점을 지적하자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적잖았다. 한 교수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전기차 충전량이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안 괜찮아' 같은 식의 인식들이 퍼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배터리 충전량 90% 이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에 기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충전량은 총열량과 비례해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배터리 화재 원인은 충전량 자체와 관계없는 배터리셀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었다.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는 전무하다.
한 교수를 포함해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학계 전문가들 역시 전기차 특정 충전량이 화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이종원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도 "전기차 충전량은 '안전 마진'을 둔 만큼 실제 배터리 용량의 100%로 충전하지 않을 뿐더러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통해 과충전을 차단하고 제어한다"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의 '전기차 충전 제한정책'은 파급력이 크다. 영향력이 가장 큰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출입에 제한을 두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관공서와 병원, 아파트 등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거나 충전기 전기 공급을 차단하기도 했다.
전기차 안전 주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나서 "공동주택단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전기차 주차에 대한 제한 조치로 주민 불편 및 주민간 불필요한 갈등 유발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안내사항을 전파하기도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배터리 충전율 제한 조치를 시행하지 않도록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전기차 배터리가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세상에 그런 동력원은 없다. 이제 태동하고 있는 시장이니 전기차 제조사·배터리 기업들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지자체 역시 다르지 않다. 다만 안전은 과학과 사실관계에 기반해 이성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여론이 들끓는다고 해서 정치적 도구로서 다뤄져선 안된다. 오히려 화재를 막기 위한 시설을 더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인천 지하주차장 화재 피해 확산의 주범이었던 스프링클러 미작동 문제를 점검해야하고 소방당국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전기차·배터리는 우리 산업계의 미래 먹거리다. 전기차 화재로 인한 우려가 높아졌다고 해서 지자체가 설익은 정책으로 ‘포비아(공포감)’를 조장해선 안된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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