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자보험이 보험사들의 격전지로 올라섰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로 그동안 보험사들의 주력 상품이었던 저축성 보험과 종신보험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업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 결과다.
생명보험사 중심으로 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한 신상품을 속속 선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손해보험사들이 그동안 높은 손해율로 외면했던 유병자보험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유병자보험 시장 재발견
의료 기술의 발달과 생활 수준의 향상 등으로 사망률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해 개정된 제10회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국내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 여성은 90.7세로 5년 전보다 각각 2.8년, 2.2년 늘어났다. 경험생명표는 생명보험 가입자의 사망을 관찰해 작성한 성별·연령별 사망률 표로, 보험업법에 따라 1988년 제1회 경험생명표를 시작으로 5년마다 작성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은 과거 질병 경력이 있어 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유병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심사를 완화하는 대신 보험료를 높이고 보장을 줄인 유병자보험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심사 과정이 간단해 ‘간편보험’이라고도 불리는 이 보험의 가입자는 2021년 361만건, 2022년 411만건에서 지난해 604만건으로 급증한 바 있다. 그동안 새로운 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유병력자들의 대기 수요가 많았고, 보험사들도 관련 상품을 다양하게 출시한 영향이 컸다.
향후 간편보험 시장 역시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저질환을 가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보험사들은 이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지 기간을 늘려 보험료를 줄인 간편보험도 속속 등장하면서 상품이 더 세분되고 있다.
기존 유병자 보험들은 대부분 3개월 내 질병 진단이나 검사 소견을 받았는지, 5년 이내 질병·상해로 입원이나 수술을 받았는지, 5년 이내 3대 질병에 대한 진단을 받았는지를 묻는 상품(3·5·5 보험)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고지 의무 기간을 10년으로 늘려 보험료를 낮춘 상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기존 유병자보험은 보험료가 일반보험에 비해 2~5배 정도 비싼 편인데, 고지의무 기간을 늘려 보험료를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리츠화재는 지난 6월 '메리츠 간편한 3·10·5건강보험2406'과 '메리츠 간편한 3·10·5건강보험(Ⅱ)2406'을 출시했다. 입원·수술 고지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 상품이다. KB손해보험도 'KB 5·10·10(오텐텐) 플러스 건강보험'과 'KB 3·10·10(삼텐텐) 슬기로운 간편건강보험'을 내놨다. 기존 계약 전 알릴 의무에 ‘건강고지’를 추가해 최대 29%까지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보험사들의 주력 상품이었던 저축성 보험이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고,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을 위한 보장 성격이 강한 종신보험의 수요도 감소하는 만큼 새로운 시장 환경에 맞는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장 강화에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까지 넘본다
수명이 길어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질병과 상해에 대한 보장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보험은 제3 보험으로 분류되며 생보사 손보사 상관없이 취급할 수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상 신계약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보험이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지난 10여년간 제3 보험 분야는 손보사들이 잡고 있었다. 보험업법 개정으로 손보사들이 제3 보험을 취급할 수 있게 된 지난 2004년부터 손보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며 현재 약 70%의 점유율을 보인다. 생보사들은 이 주도권을 뺏어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업권 1위인 삼성생명의 신계약 CSM 비중에서 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1%에서 하반기 42%, 올해 상반기 54%로 계속해서 늘었다. 전통적으로 주력하던 종신보험을 축소하고 제3 보험 상품으로 체질 개선을 진행하는 모양새다.
또한 건강과 관련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 개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건강관리 서비스,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보험 설계 등이 그 예다. 이미 KB손보는 헬스케어를 주력 신사업 중 하나로 두고 2021년 'KB헬스케어'를 설립한 바 있다. 삼성생명은 슬립테크 스타트업 ‘에이슬립’과 협업, 종합 건강관리 플랫폼 ‘더헬스’에서 수면 분석 서비스를 선보였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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