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
부산광역시에는 지난해부터 '우리동네 ESG센터'라는 이름의 자원순환 가게가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 노인들이 장난감 수리부터 환경 도슨트까지 맡아 활동하는 공간으로, 박형준 부산시장이 취임하면서 2025년까지 16개 각 군·구에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본래 'ESG'의 'S'는 '사회(Social)'를 뜻하지만, 우리동네 ESG센터의 'S'는 '어르신(Senior)'을 의미한다.
우리동네 ESG센터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환경보호와 세대 간 소통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노인들이 폐장난감을 수리하고 재활용하는 작업을 통해 환경에 기여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을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전달하거나 환경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센터 운영을 위해서 부산시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여러 유관기관이 협력하고 있다.
우리동네 ESG센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실질적인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은 '코끼리공장'이다. 코끼리공장은 울산에 본사가 위치한 장난감 전문 자원순환 기업이다. 퇴직한 시니어들에게 장난감을 수리·소독하는 소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정규직 직원 100여명 중에 80%가 노인인데, 이들은 하루 3시간 정도만 일한다. 퇴직 공무원부터 은퇴한 대기업 임원까지 다양하다. 여기에서 고쳐진 장난감들은 취약계층 어린이와 해외 난민들에게 무상으로 기부된다. 코끼리공장은 폐기물 공장도 2곳 갖고 있어 이곳에서 재사용하지 못하는 장난감의 재생원료로 각종 생활 제품을 만든다. 여기서 만들어진 소재·제품 판매와 어린이 시설 소독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 29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는 "세대 간 공동체가 깨져있는 현실 속에서 '장난감 수리'가 시니어와 아동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라며 "노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폐장난감 재활용을 통해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노인-아동 간 세대 공감을 도모하는 일석삼조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와 함께 사업하기 전 매일 같이 100명이 넘는 시 공무원과 노인인력개발원 직원들이 찾아와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갔다고. 이 대표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일하고 계신 어른들의 표정이 어떻게 이리 밝냐"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자리를 위해 만들어진 일자리가 아니라, 실제로 자원순환과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효능감을 안겨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게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은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자체와 기관의 협력을 통해 코끼리공장의 사업이 '우리동네 ESG센터'로 발전했는데, 노인 일자리와 환경보호, 세대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이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한다면,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코끼리공장의 작년 매출은 37억원 수준이다. 주 수입원은 제품 판매와 재생 소재 판매였으며, 부산시 등 공공기관에서 친환경 제품 구매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단기형 근로자를 포함한 10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800명의 노인이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확산을 위해 '거북이공장'이라는 시니어 전문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는 전국 단위의 일관된 브랜드 구축을 통해 사업의 확장성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특징이 궁금하다.
▲퇴직한 교직공무원부터 대기업 은퇴자까지 정말 다양하다.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30%는 실제로 소득이 필요한 분들이다. 이분들은 센터에서 직접 고용돼 재생 소재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고 수익을 얻는다. 또 다른 30%는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소일거리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다. 나머지 40%는 자원봉사 겸 여가활동을 원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에게는 센터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다.
-노인들의 이전 경력을 활용한다고 들었다.
▲참여 노인들의 이전 경력을 최대한 살려 업무를 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퇴직한 교사들의 경우 환경교육 강사양성 교육을 수료하게 하고, 아이들 대상으로 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하게 한다. 제조업에 종사했던 경험자들은 재활용 제품 제작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노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계속 활용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센터 확산 현황은 어떻게 되는지.
▲부산시에서는 40개의 우리동네 ESG센터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2개가 운영 중이며 올해 6개, 내년에 11개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한 센터당 약 400명의 노인이 참여하고 있어, 40개 센터가 모두 설립되면 1만 6000명의 노인 일거리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다른 지역에서의 반응도 있다고.
▲인천 미추홀구와 충남 태안군에서 하반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지역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자체장의 의지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 모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업 운영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점이 있다면.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제일 중요하다. 지자체, 공기업, 민간기업 등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센터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 같은 공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센터 설립 비용을 지원한다. 지자체에서는 지자체 소유의 유휴공간을 내어준다.
-사회적기업인데, 사업을 하면서 스스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느끼나.
▲장난감과 노인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가치 있지만 소외되기 쉬운 둘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사업의 핵심이다. 노인들은 본인이 아직 우리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또한 노인들이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수리하고 나누며 환경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대 간 교류가 이뤄진다. 핵가족화로 줄어든 노인-아동 간 접촉 기회를 늘리고, 세대 간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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