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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혔으니 나가라” 직장내괴롭힘 신고 후…지옥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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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라졌나…사각지대는?
신고시 내부고발자로 몰려 부담
따돌림·업무배제 등 2차 가해도
피해자에 불리한 처우하면 안돼

#1. 직장내괴롭힘 신고 이후 ‘조직의 장’이라는 인물로부터 “회장님도 네가 신고한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앞으로 모두 너와 함께 일하는 걸 꺼릴 거고 너는 이 회사에서 승진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한창 일해야 할 나이니 너의 미래에 대해 잘 생각해봐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권고사직으로 받아들여져 압박감을 느끼지만 저는 사직 의사가 없습니다.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상태지만 회사에선 소식이 없네요. (2023년 3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접수 제보)


#2. 9년 차 직장인 A씨는 최근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겪어 병원을 찾았다. 지난 2월 새로 발령받은 부서의 상사가 A씨 태도가 도발적이라며 따로 불러 험악한 말로 시비를 걸어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이다. 상사는 자신이 휴가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A씨의 지방 출장을 막아 신규 거래처와의 계약에 차질을 줬다. 부서 회식 자리에서는 A씨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험담을 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사무실에서 졸도한 A씨가 응급실에서 의식을 차린 뒤 상황 보고를 위해 전화를 걸자 상사는 "당신이 쉬면 남은 부서원들이 당신 몫까지 일해야 하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는 면박을 줬다. (2024년 5월 직장갑질119 접수 제보)

“찍혔으니 나가라” 직장내괴롭힘 신고 후…지옥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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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시작된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5주년을 맞았다. 법으로 사용자가 근로자가 지위나 관계상 우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은 지 5년. 지난 5년간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법의 사각지대는 어디일까.


정당한 이유 없이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의사결정 과정에 배제하는 등의 집단 따돌림,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회식 강요, 차별 대우, 성과급·급여 착취 등이 괴롭힘이다. 근로자 5인 이상 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다. 직장내괴롭힘(신체적·정신적 고통 유발 행위)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한다. 직장내괴롭힘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는 일만으로도 조직 내에서 문책당하거나 해고 등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신고의 문턱은 높은 편이다. 직장갑질119 설문에서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피해를 신고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10%대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10명 가운데 1명만 신고를 한 셈이다. 법 시행 초기인 2020년 3분기 12.2%보다 오히려 1.9%포인트 줄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괴롭힘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해고는 물론 업무배제, 급여 탈취, 명예훼손, 인사 불이익, 사생활 침해(감시), 집단 따돌림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위의 첫 번째 제보 사례에서 괴롭힘 피해자 A씨는 팀장, 부팀장, 인사팀을 통해 문제 해결을 요청했으나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결국 노동청에 신고했고 회사가 선임한 외부 노무법인에서 조사 결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해자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 재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A씨는 따돌림과 보복인사 등 2차 가해를 당했다.


최혜인 노무사는 “많은 사용자는 피해자가 사건을 외부에 신고했다는 사실만으로 ‘조직을 시끄럽게 했다’고 여긴다”면서 “조용히 나가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압박하는 행위는 2차 가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최 노무사는 “만약 사측이 직장내괴롭힘 피해 신고를 이유로 A씨에게 해고나 부당 전보 등의 불리한 조치를 취한다면 사용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부고발자가 회사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면 지적하는 방식이나 태도, 말투 등을 트집 잡아 논점을 흐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한 제보자 B씨는 회사의 조사 결과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쌍방과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B씨가 상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참고인 진술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의 주장이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심한 경우 고발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나 눈빛, 행동만으로도 트집을 잡아 경위서 등을 쓰라고 하기도 한다”면서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고발자만 조직에 분란을 일으킨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했다면 ‘고발녀’나 ‘고발남’으로 낙인찍어 침묵하게 만들고 ‘상명하복’하게 만들어 통제력을 강화하는 조직 문화도 큰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직장내괴롭힘은 구성원의 업무 능률을 떨어뜨려 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피해자도 생겼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2월14일부터 23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3명(30.5%)이 지난 1년 동안 직장내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들 가운데 15.6%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10.6%)보다 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직장내괴롭힘 가해자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 성향이 강한 나르시시스트나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본다”면서 “자신의 승진이나 포상을 위해 남을 괴롭히고 이용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에는 감정 이입을 못 한다”고 분석했다. 곽 명예교수는 “인간은 집단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무리)로부터 투명인간 취급, 배척, 중요한 회의·회사 정보 미공유, 뒷담화 등을 경험했을 때 큰 고통을 겪는다”면서 “직장 내 따돌림은 극단적 선택까지 부를 수 있는 폭력 행위자 인격살인”이라고 설명했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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